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2023/02 28

봄날 / 헤르만 헤세

그림 / 마르가리타 공주 , 벨라스케스 ​ ​ ​ 봄날 / 헤르만 헤세 ​ ​ 수풀에는 바람 소리, 또 새소리 드높이 아늑한 푸른 하늘에 의젓이 떠가는 구름 조각배... 금발의 여인을, 어린 시절을 나는 꿈꾼다. 끝없이 푸르고 높은 하늘은 내 동경의 요람. 그 속에 포근히 드러누워 나직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조용히 생각에 잠겨 든다. 어머니의 품안에 안긴 아기처럼. ​ ​ ​ 헤르만 헤세 시집 / 송영택 옮김

첫사랑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림 / 박인호 첫사랑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비록 떠가는 달처럼 미의 잔인한 종족 속에서 키워졌지만, 그녀는 한동안 걷고 잠깐은 얼굴 붉히며 내가 다니는 길에 서 있다, 그녀의 몸이 살과 피로 된 심장을 갖고 있다고 내가 생각할 때까지. 허나 나 그 위에 손을 얹어 차가운 마음을 발견한 이래 많은 것을 기도해 보았으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매번 뻗치는 손은 제정신이 아니어서 달 위를 움직이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웃었고, 그건 나를 변모시켜 얼간이로 만들었고, 여기저기를 어정거린다, 달이 사리진 뒤의 별들의 천공운행 보다 더 텅 빈 머리로. 시집 / 세계의 명시 1

그 어둡고 추운, 푸른 / 이성복

그림 / 김기정 ​ ​ ​ 그 어둡고 추운, 푸른 / 이성복 ​ ​ ​ 겨울날 키 작은 나무 아래 종종걸음 치던 그 어둡고 추운 푸른빛, ​ 지나가던 눈길에 끌려나와 아주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살게 된 빛 ​ 어떤 빛은 하도 키가 작아, 쪼글씨고 앉아 고개 치켜들어야 보이기도 한다 ​ ​ ​ ​ ​ 이성복 시집 / 아, 입이 없는 것들

고흐의 바다 / 이생진

그림 / 김진구 ​ ​ ​ ​ 고흐의 바다 / 이생진 함부로 뛰어들 수 없는 바다 어부는 배가 있어야 하고 화가는 흥분이 있어야 한다 이젤을 세우는 순간 멍해진 고흐 생트 마리 드라 메르 해안에서 지중해의 시퍼런 압력에 으스러져라 튜브를 짜는 혼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흰색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야성 바닷속으로 뛰어든 고등어와 고래와 상어의 눈에 뜨거운 아프리카가 보인다 *충남 서산 출생 *대표 시집 / 그리운 성산포 *최근 시집 / 반고흐, 너도 미쳐라 *수상 경력 / 윤동주 문학상, 이상화 문학상 ​ ​ ​

깃털 하나 / 안도현 ​

그림 / 박정실 ​ ​ ​ ​ 깃털 하나 / 안도현 ​ ​ ​ 거무스름한 깃털 하나 땅에 떨어져 있기에 주워 들어보니 너무나 가볍다 들비둘기가 떨어뜨리고 간 것이라 한다 한때 이것은 숨을 쉴 때마다 발랑거리던 존재의 빨간 알몸을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깃털 하나의 무게로 가슴이 쿵쿵 뛴다 ​ ​ ​ ​ 안도현 시집 / 그리운 여운 ​ ​ ​ ​

안개 속으로 / 헤르만 헤세

그림 / 신종섭 ​ ​ ​ ​ 안개 속으로 / 헤르만 헤세​ ​ ​ ​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나무 덤블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 나의 삶이 아직 환했을 때 내게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 안개가 내려,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 어둠을, 떨칠 수 없게 조용히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갈라놓는 어둠을 모르는 자 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 ​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삶은 외로이 있는 것 ​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 ​ ​ ​ 시집 / 세계의 명시 1 ​ ​ ​

기탄잘리 1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그림 / 이미숙 기탄잘리 1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당신은 나를 무한케 하셨으니 그것은 당신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우시고 끊임없이 이 그릇을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가냘픈 갈대 피리를 당신은 언덕과 골짜기 넘어 지니고 다니셨고 이 피리로 영원한 새 노래를 부르십니다. 당신 손길의 끝없는 토닥거림에 내 가냘픈 가슴은 한없는 즐거움에 젖고 형언할 수 없는 소리를 발합니다. 당신의 무궁한 선물은 이처럼 작은 내 손으로만 옵니다. 세월은 흐르고 당신은 여전히 채우시고 그러나 여전히 채울 자리는 남아 있습니다. * 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치는 송가라는 뜻으로 이 시집은 인간과 신(초월자)과의 관계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을 빌려서 읊은 103편의 연작시로 구성되어 있다.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그림 / 신종섭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시집 / 세계의 명시

목련 / 이대흠

그림 / 류봉현 ​ ​ ​ ​ 목련 / 이대흠 ​ 사무쳐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목련이라 해야겠다 애써 지우려 하면 오히려 음각으로 새겨지는 그 이름을 연꽃으로 모시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으랴 한때 내 그리움은 겨울 목련처럼 앙상하였으나 치통처럼 저리 다시 꽃 돋는 것이니 그 이름이 하 맑아 그대로 둘 수가 없으면 그 사람은 그냥 푸른 하늘로 놓아두고 맺히는 내 마음만 꽃받침이 되어야지 목련꽃 송이마다 마음을 달아두고 하늘빛 같은 그 사람을 꽃자리에 앉혀야지 그리움이 아니었다면 어찌 꽃이 폈겠냐고 그리 오래 허공으로 계시면 내가 어찌 꽃으로 울지 않겠냐고 흔들려도 봐야지 또 바람에 쓸쓸히 질 것이라고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이라고 ​ ​ ​ 이대흠 시집 /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