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2021/08 31

고요한 귀향 / 조 병 화

그림 / 김 희 정 ​ ​ ​ ​ 고요한 귀향 / 조 병 화 ​ ​ ​ 이곳까지 오는 길 험했으나 고향에 접어드니 마냥 고요하여라 ​ 비가 내리다 개이고 개다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다 폭설이 되고 폭설이 되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홍수가 되다 가뭄이 되고 가을 겨울이 되면서 만남과 이별이 세월이 되고 마른 눈물이 이곳이 되면서 ​ 지나온 주막들 아련히 고향은 마냥 고요하여라 ​ 아, 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 조병화시집 / 고요한 귀향 ​ ​ ​ ​ 그림 / 김 희 정

가을 편지 / 나호열

그림 / 노 숙 경 ​ ​ ​ 가을 편지 / 나호열 ​ 당신의 뜨락에 이름모를 풀꽃 찾아왔는지요 눈길 이슥한 먼 발치에서 촛불 떨어지듯 그렇게 당신을 바라보는 꽃 ​ 어느 날 당신이 뜨락에 내려오시면 이미 가을은 깊어 당신은 편지를 읽으시겠는지요 ​ 머무를 수 없는 바람이 보낸 당신을 맴도는 소리죽인 발자국과 까만 눈동자 같은 씨앗들이 눈물로 가만가만 환해지겠는지요 ​ 뭐라고 하던가요 작은 씨앗들은 그냥 당신의 가슴에 묻어 두세요 상처는 웃는다 라고 기억해 주세요 ​ 당신의 뜨락에 또 얼마마한 적막이 가득한지요 ​ ​ ​ 나호열 시인 * 1953년 충남 서천 출생 *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 1991년 《시와시학》 중견시인상 수상 * 2004년 녹색 ..

길상사와 김영한(자야 /子夜)

비가 살짝 내린 날에 길상사를 찾았다. 길상사는 조계종 송광사(전라남도 순천)의 말사다. ​ 연꽃잎이 환하게 반겨주었다. 꽃은 주로 7-8월에 핀다. ​ 백석과 김영한의 애절하고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떠오른다. ​ 이곳은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유명한 요정 대원각 요정이었다. ​ 그 주인의 호는 자야라고 하는 김영한 여사였다. ​ 만나지도 못하면서 젊은 날 사랑하던 이를 일생 동안 마음에 안고 살았다. ​ 대원각은 그때 시가로 1,000억 원이었으니 지금 계산으로는 상상도 안 가는 금액이다. 법정 스님에게 요정 부지를 시주하여 이후에 사찰이 되었다. 기자가 큰 돈을 기증하며 아깝지 않냐고 묻자 "1,000억이 그사람(시인 백석)시 한 줄만 못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 자야는 법정 스님의..

바람의 시간들 / 이규리

그림 / 안 효 숙 ​ ​ ​ 바람의 시간들 / 이규리 종일 바람 부는 날, 밖을 보면 누군가 떠나고 있는 것 같다 바람을 위해 허공은 가지를 빌려주었을까 그 바람, 밖에서 부는데 왜 늘 안이 흔들리는지 종일 바람을 보면 간간이 말 건너 말을 한다 밖으로 나와, 어서 나와 안이 더 위험한 곳이야 하염없이 때때로 덧없이 떠나보내는 일도 익숙한 그것이 바람만의 일일까 이별의 경험이 이별을 견디게 해주었으니 바람은 다시 바람으로 오리라 종일 바람 부는 날, 밖을 보면 나무가 나무를 밀고 바람이 바람을 다 밀고 ​ ​ ​ 이규리 시집 / 이럴 땐 쓸쓸해도 돼 ​ ​ ​

개혁 / 권 영 하 <신춘문예 당선 시>

​ 개혁 / 권 영 하 ​ ​ 도배를 하면서 생각해보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낡은 벽은 기존의 벽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진액을 빨아 버짐으로 자랐다 벽지를 그 위에 새로 바를 수도 없었다 낡고 얼룩진 벽일수록 수리가 필요했고 장판 밑에는 곰팡이꽃이 만발발했다 합지보다 실크 벽지를 제거하는 것이 더 힘들고 시간도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사하거나 집을 새로 지을 수도 없었기에 낡은 벽을 살살 뜯어내고 새 벽지를 재단해 잘 붙였야 했다 습기는 말리고 울퉁불퉁한 곳에 초배지를 발랐다 못자국과 흔적은 남아있었지만 잘 고른 벽지는 벽과 천장에서 환하게 뿌리를 내렸다 온몸에 풀을 발라 애면글면 올랐기에 때 묻고 해진 곳은 꽃밭이 되었다 갈무리로 구석에 무늬를 맞추었더니 날개 다친 나비도 날아올랐다 방안이 보송보송해졌다 ​..

블루 / 나 호 열

그림 / 박 상 희 ​ ​ ​ 블루 / 나 호 열 ​ ​ ​ 투명한데 속이 보이지 않는 풍덩 빠지면 쪽물 들 것 같은데 물들지 않는, ​ 가슴이 넓은 너에게로 가면 나는 새가 되고 유유히 헤엄치는 인어가 되지 푸를 것 같은데 푸르지 않는 눈물처럼 너는 나의 하늘 너는 나의 바다 ​ 그저 푸름이지 푸름이지 되뇌면 푸릉푸릉 싹이 돋을 것 같은 ​ ​ 시집 /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그림 / 김 정 수 ​ ​ ​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건너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면서 나는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 ​ ​ 시집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 ​ ​

홍천 수타사 산소길 (O2)

서울 출발(6시 30) 두 시간 만에 홍천 수타사 (8시 30) 주차장에 도착했다. 수타사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 예쁘다. 수타교를 지나서 간다. 푸른 나무 터널을 지나간다. 코스모스야! 너무 일찍 피지 않았니? 수타사는 공작산 (887m) 서쪽에 자리 잡은 절이다. 수타사 돌담이 정겹다. 공작산을 병풍처럼 두른 수타사 전경 이 절의 효시는 신라 708년(선덕왕 7)에 원효가 우적산에 창건한 일월사다. 1457년 (세조 3)에 지금의 위치로 옮긴 뒤 수타사라고 절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36년 (인조 14)에 공잠이 다시 재건했다. 산소길이 시작되기 전에 연못을 만났다. 연꽃을 보면 마음도 활짝 열린다. 연꽃이 활짝 만개했다. 데크 길도 잘 만들어 놓았다. 연꽃의 고고한 모습을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