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와 김영한(자야 /子夜)

비가 살짝 내린 날에 길상사를 찾았다.

길상사는 조계종 송광사(전라남도 순천)의 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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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잎이 환하게 반겨주었다.

꽃은 주로 7-8월에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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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과 김영한의 애절하고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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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유명한 요정

대원각 요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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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인의 호는 자야라고 하는 김영한 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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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도 못하면서 젊은 날 사랑하던 이를 일생

동안 마음에 안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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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각은 그때 시가로 1,000억 원이었으니 지금 계산으로는 상상도 안 가는 금액이다.

법정 스님에게 요정 부지를 시주하여 이후에 사찰이 되었다.

기자가 큰 돈을 기증하며 아깝지 않냐고 묻자

"1,000억이 그사람(시인 백석)시 한 줄만 못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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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을 받았다.

40을 넘어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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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모은 재산을 모두 내놓고 맨손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내에 그녀의 재가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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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동안 사랑하는 백석을 기념하는 문학상을

제정하기 위해서 2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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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인생, 가난 속에 때어나 16살 때에 팔려가다

싶이 해서 만난 남편은 자살로 세상을 뜨고

마지못해 기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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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였던 백석 집안의 반대로 인연을 맺을 수 없음을 알고 헤어진다.

백석은 부모가 짝지어준 여자와 결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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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 가서 함께 살자는 백석의 말을 뿌리친다.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간직한 채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한지에 써서 남기고 월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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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조국의 기쁨도 잠시 또 나라는 두 동강이나고

애인 백석은 만주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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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한 이별

한 평생을 젊었을 때 한번 맺은 인연을 변치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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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백석을 사랑한 자야는 많은 사람들

가슴에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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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법정 스님께서 거처하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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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길상사의 이름은 그녀의

법명인 길상화에서 따서 길상사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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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웅전이라고 하지 않고 김영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극락전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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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이 죽도록 보고 싶었던 그녀는 줄담배를 피우고

마침네 폐암이 발병해서 죽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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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사랑 백석 / 1955년 문학동네>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 창작과 비평>

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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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그녀는 목욕을 재개하고 절에서 참배하고

하룻밤을 길상헌에서 자고 임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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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살의 나이에 첫사랑을 가슴에 간직한 채 생을 마감한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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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1912-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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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 푹푹 눈이 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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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홀로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을 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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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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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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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리 : 오두막집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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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출이 : 뱁새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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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곤히 : 소리 없이, 고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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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 백석 시집 (양장본)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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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마당에 서니 시가 마음에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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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갠 길상사 하늘이 너무 맑아서 슬프다.

길상사를 뒤로하고 고갯길을 쓸쓸히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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