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2021/07 32

석류 / 복 효 근

그림 / 김 정 수 ​ ​ ​ 석류 / 복 효 근 ​ ​ 누가 던져놓은 수류탄만 같구나 불발이긴 하여도 서녘 하늘까지 붉게 탄다 네 뜰에 던져놓았던 석류만한 내 심장도 그랬었거니 불발의 내 사랑이 서천까지 태우는 것을 너만 모르고 나만 모르고.... 어금니 사려물고 안으로만 폭발하던 수백 톤의 사랑 혹은 적의 일지도 모를 ​ ​ ​ ​ 복 효 근 * 1962년 전라북도 남원 출생 * 1988년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 1991년 계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마늘촛불』 『따뜻한 외면』 『꽃 아닌 것 없다』 ​ ​ ​ ​ ​

해룡산 둘레길(새벽 산행)

해룡산 둘레길 새벽 산행을 결심했다. 새벽 4시에 기상! ​ 오지재 고개에서 6시 30분에 출발 차를 오지재 고개에 세우면 언덕을 힘들게 오른다. ​ 차를 타고 해룡산쪽으로 2~3분 올라가면 차를 세울 수 있는 공터가 나온다. ​ 장림고개까지는 7.1km 약 왕복 5시간 정도 걸린다. ​ 중간 정자 5Km(왕복 3시간)까지 가기로 결정을 했다. ​ 과거에 인기 드라마 각시탈 촬영지였구나. ​ 부드럽게 굽어진 길이 정감있게 느껴진다. ​ 금계국이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 금계국과 망초꽃이 길가에 가득 피었다. ​ 칡나무 꽃을 오랜만에 본다. ​ 숲이 우거지고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 길이 넓어서, 그늘이어서 정말 좋다. ​ 첫 번째 휴식 장소가 나타났다. ​ 바위틈에서도 여전히 식물이 자란다. ​..

겨울달 / 문 태 준

그림 / 전 지 숙 ​ ​ ​ 겨울달 / 문 태 준 ​ ​ 꽝꽝 얼어붙은 세계가 하나의 돌멩이 속으로 들어가는 저녁 ​ 아버지가 무 구덩이에 팔뚝을 집어넣고 밑동이 둥굴고 크고 흰 무 하나를 들고 나오시네 ​ 찬 하늘에는 한동이의 빛이 떠 있네 ​ 시래기 같은 어머니가 집에 이고 온 저 빛 ​ 문태준 시집 /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 ​ ​ ​

Brewda(부르다 카페)

​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어디로 안내를 할까? 고민 중에 기산저수가 아름다운 Brewda(부르다 카페)로 안내를 했습니다. ​ ​ 카페의 빵을 보면서 사람 유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 그런데 왜? 더운 여름 김을 덥고 잠을 자니? 이런 유형은 살짝 내면을 감추는 유형입니다. 친구로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 ​ 소시지를 넣은 너의 정체는 뭐니? 수려한 외모, 그녀는 유독 인기가 많습니다. 자기가 맛있고 예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조금 교만하고 이기적입니다. ​ ​ 얼굴은 별로인데 마음은 비단같이 아름다운 그녀입니다. 친구는 많은데 애인은 없는 그녀입니다. ​ ​ 뛰어난 화장술이 필요한 그녀입니다. 그래도 성형은 하지 않았습니다 난 너의 그 모습이..

추암에서 / 나 호 열

​ ​ ​ ​ 추암에서 / 나 호 열 ​ ​ ​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공손해진다. 어떤 거만함도, 위세도 멀리서 달려와 발 밑에 부서지는 포말에 불과한 것임을 모르는 채 깨닫게 된다.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공손해진다. 보지 않으려해도 볼 수 밖에 없는 수평선을 보며 위태로운 줄타기의 광대가 되는 자신을 떠올리거나 수평선의 끝을 잡고 줄넘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무의식적으로 손을 길게 내밀어 고무줄처럼 수평선을 끌어당기고 싶다면 아직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 좀 더 살아야하는 것이다. ​ ​ ​ 그림 / 김 경 미

​길 위에서 중얼 거리다 / 기 형 도

그림 / 조 지 원 ​ ​ ​ 길 위에서 중얼 거리다 / 기 형 도 ​ ​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들이여 ​ ​ ​ 기형도 시집 / 입 속의..

봄 / 이 성 부

그림 / 김 정 연 ​ ​ ​ ​ 봄 / 이 성 부 ​ ​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 ​ ​ 시집 /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 ​ *1942년 전남 광주 출생 *첫 시집 (이성부 시집) 1969,으로 현대문학상 수상 *전남일보 신춘문예..

원죄 / 최 영 미

그림 / 박 광 선 ​ ​ ​ 원죄 / 최 영 미 ​ ​ 모르는 사람과 악수하지 않고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너무 표시내고 목소리가 크고 알아서 잘해주지 않고 눈치도 상식도 없고 높은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하고 (알아야 눈치를 보지) 신간이 나와도 책을 돌리지 않고 선배 대접을 하지 않고 후배를 챙기지 않고 (후배가 가방인가? 챙기게...) ​ 파란불이 켜지면 제일 먼저 건너고 (살 떨리는 순발력!) 젊은 애들보다 걸음이 빠르고 맛있는 건 혼자 먹는 사람 ​ 인생은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 뷔페가 아니야 ​ ​ 최영미 시집 / 공항 철도 ​ ​ ​

마지막 기회 / 최 영 미

그림 / 박 광 선 ​ ​ ​ 마지막 기회 / 최 영 미 ​ ​ 늦게까지 독신이던 친구 A가 결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자보다 테니스를 좋아하던 B도 선을 봐서 결혼 했다고 ​ 마지막 남은 노처녀들이 일망타진되던 봄 ​ 침대에 누워 푸른 바다에 몸을 맡겼다 산과 바다가 보이는 속초의 아파트에서 ​ 더 늦기 전에 아이라도 건질까? ​ 여자친구들이 떠난 뒤 남자들이 떠난 뒤 문장만이 오래 살아남아 ​ 이십 년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 잉크 담배나 태워야지 ​ ​ ​ 최영미 시집 / 공항철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