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암에서 / 나 호 열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공손해진다.
어떤 거만함도, 위세도
멀리서 달려와 발 밑에 부서지는
포말에 불과한 것임을 모르는 채
깨닫게 된다.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공손해진다.
보지 않으려해도 볼 수 밖에 없는
수평선을 보며
위태로운 줄타기의 광대가 되는 자신을
떠올리거나
수평선의 끝을 잡고 줄넘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무의식적으로 손을 길게 내밀어 고무줄처럼 수평선을 끌어당기고 싶다면
아직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
좀 더 살아야하는 것이다.
그림 / 김 경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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