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2025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그림 / 김정현 2025년 농민신문 신춘 당선 시 모란 경전 / 양점순 나비는 비문을 새기듯 천천히 자수 병풍에 든다 아주 먼 길이었다고 물그릇 물처럼 잔잔하다 햇빛 아지랑이 속에서 처음처럼 날아오른 나비 한 마리 침착하고 조용하게 모란꽃 속으로 모란꽃 따라 자라던 세상 사랑채 여인 도화의 웃음소리 대청마루에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운 아이 모란 그늘 흩어지는 뒤뜰 흐드러지게 피는 웃음소리 그녀가 갈아놓은 먹물과 웃음을 찍어 난을 치고 나비를 그려 넣는 할아버지 ..

명시 2025.03.27 0

염천(炎天) / 마경덕

​염천(炎天) / 마경덕​ 산기슭 콩밭에 매미울음 떨어짝을 찾는 쓰르라미 울음이 대낮 콩밭보다 뜨겁다이놈아 그만 울어!불볕에 속곳까지 흠뻑 젖은 할망구등 긁어줄 영감 지심* 맬 딸년도 없어 더 속이 쓰리다호미 날에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떨려 나가고청상으로 키운 아들이 죽고 콩밭짓거리*로김치 담궈 올린 외며느리에게서 떨려 나온 할멈도쓰름쓰름 다리 뻗고 울고 싶은데그동안 쏟아버린 눈물이 얼마인지, 평생 울지 못하는암매미처럼 입 붙이고 살아온 세월슬픔도 늙어 당최 마음도 젖지 않고콩 여물듯 땡글땡글 할멈도 여물어서이젠 염천 땡볕도 겁나지 않는다팔자 센 할멈이나 돌밭에 던져지는 잡초나독하긴 매한가지살이 물러 짓무르는 건 열이 많은 열무손끝만 스쳐도 누렇게 몸살을 탄다호랭이도 안 물어가는 망구도 살이 달고열무같이..

명시 2025.03.26 1

2025, 미네르바 신인상 / 이효

부처가된 노가리 / 이 효 장엄한 일출을 숯불에 굽는다벌겋게 익어버린 노을 질긴 바다를 굽고 또 굽는다쪼그라든 몸통, 가시는 슬픔의 무게를 던다 머리는 어디로 갔을까? 짭짤한 맛, 고단한 날들의 바람바다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식탁에 놓인 고뇌의 모서리 씹힐 때마다 걸리는 가시거친 세상에서 시간을 견디는휘우듬한 등은 일어서지 못한다 실핏줄도 막혀버린 어제와 오늘수심 깊은 시퍼름이 울컥 올라온다 바다를 잃어버린다는 것은출렁이는 꼬리가 잘린 것 부드럽게 짓이긴 속살누군가의 입에서 상냥한 저녁이 된다  허공을 움켜잡은 바다의 조각들수상한 부처가 되어간다   단팥죽의 비밀 / 이 효  끈적한 남자의 눈은 겨울이다동동 떠 있는 하얀 눈동자 초점 잃은 아버지다 불안한 내 손은 탁자 아래서 울컹거리는 안부를 갉아먹는다 ..

자작시 2025.03.24 2

우린 안부를 묻지 않아도 / 박 순

그림 / 이수아​​ 우린 안부를 묻지 않아도  / 박 순  ​밤새, 먼지 뒤집어쓰며 가슴 움켜쥐며피 토하며 돌렸던 기계들소주잔 기울이며 신라면 안주 삼아가는 곡소리에내 숨통을 조였다고왜 벌써 가냐고 주먹을 허공에 휘두른다앙다문 입술오른쪽으로 기울인 어깨화장化粧 못해 새까만 얼굴로 누워있던 그 사람불편한 진실에 고개 흔들던 그 밤난 왜 모르고 살았을까한파가 몰아친다 ​ ​시집 / 바람의 사원​

명시 2025.02.17 9

당신의 금은 괜찮은지요 / 이효

그림 / 이석보​​당신의 금은 괜찮은지요 / 이효​​초등학교 3학년 5반, 반이 바뀌고가슴이 콩닥거릴 시간도 없이 순간, 내 생애 최초로 받은 경계선  칼로 그은 직선 하나 앞에 무참하게 잘려나간 지우개 하나어른이 되어서도 가슴에 금이 남아있다 선배 주선으로 나간 미팅잘 생긴 청년이 신청한 애프터가슴이 콩닥거렸지만 선을 그었다  그놈이 바로 그 자리에 나왔다 저울로 달아 돌려보낸 거절의 선  그런 내게 어머니는 호미로 선을 그으며꽃씨를 뿌리고 물을 주셨다 사람들은 가슴속에 저마다 지워야 할 금이 있다​​​​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자작시 2025.02.14 1

2025 경상일보 신춘문예

백야 / 원수현백야 / 원수현창을 하나 갖고 싶다고 말했다아주 작아서 내 눈에만 보이는 창을사람들은 으레 그랬듯 그저 스쳐 지나갈 것이고나는 그 작은 곳에 눈을 대고 밖을 보기로 했어틈 사이로가진 것들이 보였다 너무도 많고 때로는 아무것도 없고많아서 우는 사람들없어서 우는 사람들우리 모두는 이렇게 불행함을 하나씩 눈에 넣었지이곳을 떠나면 행복해질 거라는 사람들그들은 지금 어디에?빙하를 뚫고 도달한 곳이 빙하라니요!그곳도 돌았다 빙글빙글 꼭짓점도 결국에는그대는 미치어 있는가그대는 미쳐 있던가아 다르고 어 달라서 우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뱀을 피해 장대에 올라간다고 했다점점 더 길어지는 그림자들우리의 그림자가 세상을 덮을 때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깨진 창문을 다시 기우는 ..

하루 시 필사 2025.02.13 5

바람의 사원 / 박 순

바람의 사원 / 박 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구부러진 길을 갈 때 몸은 휘어졌고발자국이 짓밟고 지나간 자리에는 꽃과 풀과 새의 피가 흘렀다바람이 옆구리를 휘젓고 가면돌멩이 속 갈라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바람의 늑골 속에서 뒹구는 날이 많았다바람이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고 채찍질을 하면 바람보다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었다질주본능으로 스스로 박차를 가했던 시간들옆구리의 통증은 잊은 지 오래일어나지 못하고 버려졌던검은 몸뚱이를 감싼 싸늘한 달빛그날 이후내 몸을 바람의 사원이라 불렀다 ​​  시집 / 바람의 사원

명시 2025.02.07 6

루주가 길을 나선다 / 이 효

​​루주가 길을 나선다 / 이 효​​​잊혀진 한 사람이 그리울 때 안부는 붉다 시작과 끝은 어디쯤일까 헤어질 때, 떨어진 저 침묵 루주가 진해질수록 그리움의 변명은 파랗다 인연은 호수에 배를 띄워 다가가는 것 거울 앞 침침한 시간들 부러진 루주 끝에도 심장은 뛴다  내가 먼저 길을 나서는 것은  슬픔과 후회가 거기 있기 때문 운명을 바른다​​​​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자작시 2025.02.0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