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2021/08 31

정착 / 이 병 률

그림/ 김 윤 선 ​ ​ ​ 정착 / 이 병 률 ​ ​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집을 지을 것이다 아프리카 마사이 여부족처럼 결혼해서 살 집을 내손으로 지을 것이다 ​ 꽃을 꺾지 않으려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꽃을 꺾는 마음도 마음이라고 말할 것이다 ​ 내가 여자라면 사랑한다고 자주 말할 것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신을 매번 염려할 것이다 ​ 내가 여자라면 칼을 들고 산으로 빨려 들어가 춤을 출 것이다 ​ 그러다 작살을 쥐고 한 사내의 과거를 해집을 것이다 외롭다고 말한 뒤에 외로움의 전부와 결속할 것이다 ​ 내가 여자로 태어난다면 고아로 태어나 이불 밑에다 북어를 숨겨둘 것이다 숨겨 두고 가시에 찔리고 찔리며 살다 그가시에 체할 것이다 ​ 생애 동안 한 사람에게 나눠 받은 것들을 지울 것이며 생략할 것이다 ​..

장림고개 넘고, 해룡산 임도

장림고개 넘고, 해룡산 임도 정자까지 8Km 걷기 예상 시간 3시간 장림 고개에서 Am 6시 30분에 출발했다. 장림고개 주변 풍경들 와우 ^^ 처음부터 나무 계단이 나온다. 어제 태풍이 지나가고 하늘이 너무 맑다. 산악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헉~태풍에 도토리 잎들이 많이 떨어졌다. 장림 고개를 내려와서, 해룡산 숲길 시작하는 전원주택 해룡산 중간 정자까지가 목표점이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너무 예뻐서 찰칵 해룡산 임도가 좋은 이유는 걷기가 너무 편하다. 맨발로 걷고 싶은 충동까지 생긴다. 들풀들이 예쁜 꽃을 피워올렸다. 숲이 우거진 모습, 푸른색이 아주 깊고 짙게 느껴진다. 오늘은 유난히 하늘도 푸르고 맑다. 칡꽃도 예쁘게 피었다. 노란 꽃이 몸을 흔들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우산같이 생긴..

산이 사람을 가르친다 / 나 호 열

그림 / 진 선 미 ​ ​ ​ 산이 사람을 가르친다 / 나 호 열 ​ 산이 사람을 가르친다 세상이 싫어 산에 든 사람에게 산이 가르친다 떠들고 싶으면 떠들어라 힘쓰고 싶으면 힘을 써라 길을 내고 싶으면 길을 내고 무덤을 짓고 싶으면 무덤을 지어라 산에 들면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 않는다 제 풀에 겨워 넘어진 나무는 썩어도 악취를 풍기지 않는다 서로 먹고 먹히면서 섣부른 한숨이나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산이 사람을 가르친다 바람의 문법 물은 솟구치지 않고 내려가면서 세상을 배우지 않느냐 산의 경전을 다 읽으려면 눈이 먼다 천 만 근이 넘는 침묵은 새털 보다 가볍다 산이 사람을 가르친다 죽어서 내게로 오라 ​ ​ ​ 나호열 시집 / 당신에게 말 걸기 ​ ​ ​

바닷가에 대하여 / 정 호 승

그림 / 이 효 경 ​ ​ ​ 바닷가에 대하여 / 정 호 승 ​ ​ ​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

풋고추에 막걸리 한잔하며 / 홍 해 리

풋고추에 막걸리 한잔하며 / 홍 해 리 처음 열린 꽃다지 풋고추 몇 개 날된장에 꾹꾹 찍어 막걸리를 마시네 나도 한때는 연하고 달달했지 어쩌다 독 오른 고추처럼 살았는지 죽을 줄 모르고 내달렸는지 삶이란 살다 보면 살아지는 대로 사라지는 것인가 솔개도 하늘을 날며 작은 그늘을 남기는데 막걸리 한잔할 사람이 없네 아파도 아프다 않고 참아내던 독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인가 보잘것없는 꽃이 피고 아무도 모르는 새 열매를 맺어 접시에 자리잡은 고추를 보며 검붉게 읽어 빨갛게 성숙한 가을을 그리네 홍해리 시인 / 약력 ​ * 충북 청주에서 출생(1942년)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1964년) 1969년 시집 를 내어 등단함. ​ ​ ​ 시집

바다와 나비 / 김 기 림​

그림 / 김 미 영 ​ ​ ​ 바다와 나비 / 김 기 림 ​ ​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알려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 ​ 김기림 시선집 / 바다와 나비 (작가와 비평) ​ ​ ​

세상에 나와 나는 / 나 태 주

그림 / 소 순 희 ​ ​ ​ 세상에 나와 나는 / 나 태 주 ​ ​ 세상에 나와 나는 아무것도 내 몫으로 차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 꼭 갖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 푸른 하늘빛 한 쪽 바람 한 줌 노을 한 자락 ​ 더 욕심을 부린다면 굴러가는 나뭇잎새 하나 ​ 세상에 나와 나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간직해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 꼭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단 한 사람 눈이 맑은 그 사람 가슴속에 맑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 ​ 더 욕심을 부린다면 늙어서 나중에도 부끄럽지 않게 만나고 싶은 한 사람 그대. ​ ​ ​ 나태주 시집 / 혼자서도 별인 너에게 ​ ​ ​

너를 만나러 가는 길 / 용 혜 원

그림 / 허 필 석 ​ ​ ​ 너를 만나러 가는 길 / 용 혜 원 ​ ​ ​ 나의 삶에서 너를 만남이 행복하다 ​ 내 가슴에 새겨진 너의 흔적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 나의 길은 언제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 그리움으로 수놓은 길 이 길은 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도 내가 사랑해야 할 길이다 ​ 이 지상에서 내가 만난 가장 행복한 길 늘 가고 싶은 길은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 ​ ​ ​ 시집 / 용혜원의 그대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시 ​ ​ ​

간발 / 황인숙

그림/ 이 재 구 ​ ​ ​ 간발 / 황인숙 ​ ​ 앞자리에 흘린 지갑을 싣고 막 떠나간 택시 오늘따라 지갑이 두둑도 했지 ​ 애가 타네, 애가 타 당첨 번호에서 하나씩 많거나 적은 내 로또의 숫자들 ​ 간발의 차이 중요하여라 시가 되는지 안 되는지도 간발의 차이 간발의 차이로 말이 많아지고, 할 말이 없어지고 ​ 떠올랐던 시상이 간발 차이로 날아가고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길을 놓치고 날짜를 놓치고 사람을 놓치고 ​ 간발의 차이로 슬픔을 놓치고 슬픔을 표할 타이밍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네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뺨을 푸들거리며 ​ 놓친 건 죄다 간발의 차이인 것 같지 누군가 써버린 지 오랜 탐스런 비유도 간발로 놓친 것 같지 ​ 간발의 차이에 놓치기만 했을까 잡기도 했겠지, 생기기도 했겠지 간발의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