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간발 / 황인숙

푸른 언덕 2021. 8. 2. 18:30

그림/ 이 재 구

 

간발 / 황인숙

 

앞자리에 흘린 지갑을 싣고

막 떠나간 택시

오늘따라 지갑이 두둑도 했지

애가 타네, 애가 타

당첨 번호에서 하나씩

많거나 적은 내 로또의 숫자들

간발의 차이 중요하여라

시가 되는지 안 되는지도 간발의 차이

간발의 차이로 말이 많아지고, 할 말이 없어지고

떠올랐던 시상이 간발 차이로 날아가고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길을 놓치고 날짜를 놓치고 사람을 놓치고

간발의 차이로 슬픔을 놓치고

슬픔을 표할 타이밍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네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뺨을 푸들거리며

놓친 건 죄다 간발의 차이인 것 같지

누군가 써버린 지 오랜

탐스런 비유도 간발로 놓친 것 같지

간발의 차이에 놓치기만 했을까

잡기도 했겠지, 생기기도 했겠지

간발의 차이로 내 목숨 태어나고

숱한 간발 차이로 지금 내가 이러고 있겠지

간발의 차이로

손수건을 적시고, 팬티를 적시고

황인숙 간발 / 2018 현대문학상수상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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