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정착 / 이 병 률

푸른 언덕 2021. 8. 11. 19:15

그림/ 김 윤 선

 

정착 / 이 병 률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집을 지을 것이다

아프리카 마사이 여부족처럼

결혼해서 살 집을 내손으로 지을 것이다

꽃을 꺾지 않으려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꽃을 꺾는 마음도 마음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여자라면 사랑한다고 자주 말할 것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신을 매번 염려할 것이다

내가 여자라면 칼을 들고 산으로 빨려 들어가

춤을 출 것이다

그러다 작살을 쥐고 한 사내의 과거를 해집을 것이다

외롭다고 말한 뒤에 외로움의 전부와 결속할 것이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다면 고아로 태어나

이불 밑에다 북어를 숨겨둘 것이다

숨겨 두고 가시에 찔리고 찔리며 살다

그가시에 체할 것이다

생애 동안 한 사람에게 나눠 받은 것들을

지울 것이며

생략할 것이다

 

이병률 시집 / 바다는 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