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 1363

구름 ( 자작 시 )

구름 / 이 효 하늘은 푸른 은막 구름은 춤추는 무희 뻐꾸기 소리 장단 맞춰 북쪽 고향으로 흐른다 뒤늦게 핀 철쭉꽃 나도 함께 가련다 멀리서 들리는 바람 소리 구름 위로 철쭉 꽃 들어 올린다 붉은빛으로 물든 하늘 새색시 연분홍 치맛자락 서쪽 하늘에 펄럭인다 꿈이라도 좋다 한 번만이라도 구름 따라 고은 치맛자락 입고 하늘에서 돌아봤으면 좋겠다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뻐꾸기 소리 장단 맞춰 구름 따라 고향 가는 꿈을 꾼다. *살아생전에 북쪽 고향을 그리워 하셨던 아버님 생각이 나네요.

공기시론

공기시론 / 황송문 시를 사랑하면서도 그게 그렇게 대단한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느니라. 폐에서는 꽈리가 열리고 특발성 폐섬유화증이라고 구름 같은 솜털이 떠다니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노옹이 청계산 숲속을 거닐고 있었느니라. 처녀 산이라 물도 많고 경치가 좋아 더 나아가고 싶은데 코에 연결된 산소 파이프가 다 되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되자 성깔있는 노옹은 산소줄을 빼어던지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느니라. 아아, 공기가 좋구나! 죽을 사람도 살리는구나. 이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한 자락, 유안진 시인의 지론이 떠올랐느니라. "값이 없을수록 좋은 거지요. 공기 햇볕 바람 하느님... 값이 없는 게 없으면 모든 생명은 죽지요. 시는, 시인에게는 하나님 다음, 누가 알아주던 말든 공기처럼 값이 ..

삼릉 숲

삼릉숲 / 나 호 열 소나무 숲을 지났을 뿐이다 화살촉 같은 아침 햇살이 조금씩 끝이 둥글어지면서 안개를 톡톡 칠 때마다 아기 얼굴 같은 물방울이 잠깐 꽃처럼 피었다 지는 그 사이를 천 년 동안 걸었던 것이다 너무 가까이는 말고 숨결 들릴 듯 말 듯한 어깨 틈만큼 그리워했던 것 순간에도 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정지의 춤사위 군무는 아름다운 음악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바람을 가득 안거나 구름을 머리에 인 분명 지금도 살아 꿈틀거리는 그들이 내게는 또렷이 한 사람으로 보인다 구부러지고 뒤틀리면서 하늘을 향해 오르는 불타오르는 기도의 뒷모습 서늘하다

산속에서

산속에서 / 나희덕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바보 만득이

바보 만득이 / 정 현 종 거창 학동 마을에는 바보 만득이가 사는데요 글쎄 그 동네 시내나 웅덩이에사는 물고기들은 그 바보한테는 꼼짝도 못해서 그 사람이 물가에 가면 모두 그 앞으로 모여든데요 모여들어서 잡아도 가만있고 또 잡아도 가만 있고 만복이 하는대로 그냥 가만히 있다지 뭡니까 올 가을에는 거기 가서 만복이하고 물가에서 하루 종일 놀아볼까 합니다 놀다가 나는 그냥 물고기가 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