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966

엄마의 꽃밭 / 김 광 희( 2021 신춘문예 조선일보 / 동시 )

그림 / 김 광 해​ ​ ​ ​ 엄마의 꽃밭 / 김 광 희 ( 2021 신춘문예 조선일보 / 동시 ) 종일 튀김솥 앞에 서서 오징어 감자 튀기는 엄마 밤늦게 팔에다 생감자 발라요. 그거 왜 발라? 예뻐지려고 웃으며 돌아앉아요. 얼마나 예뻐졌을까 곤히 잠든 엄마 팔 걷어 봐요. 양팔에 피어 있는 크고 작은 꽃들 튀김기름 튄 자리마다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동생과 나를 키운 엄마의 꽃밭 팔뚝에 가만히 얼굴을 묻으면 아릿한 꽃향기에 눈이 촉촉해져요. ​ ​ ​ * 1957년 경주 출생 한국 방송 통신대 국어국문과 졸업 * 2006 신춘문예 시 당선 * 2016 신춘문예 시조 당선 ​ ​ ​ ​

내 사랑의 날들아 / 용 혜 원

그림 / 김 정 수 내 사랑의 날들아 / 용 혜 원 내 사랑의 날들아 내 가슴에 남아 떠나가지 마라 잊혀지지도 벗겨지지도 씻겨 내려가지도 마라 너를 내 가슴에 새겨두고 녹슬지 않도록 닦고 닦아 찬란한 빛을 내고 싶다 우리 사랑의 깊이만큼 내 몸 깊숙한 속살까지 내 몸 골격까지 아파도 좋다 간이 저리도록 그리운 것이 있어야 사랑하는 맛이 난다 발이 부르트도록 기다림이 있어야 살아가는 맛이 난다 되새겨보아도 좋을 것이 있어야 여운이 있다 나는 그대 사랑으로 살아가고 싶다 내 사랑을 남기고 싶다 내 피를 물감처럼 풀어 내 사랑을 그리고 싶다 우리가 저지른 사랑은 때로는 슬퍼도 좋다 내 사랑의 날들아 내 가슴에 남아 떠나가지 마라 용혜원 시집 / 지금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

그릇 1 / 오 세 영

그림 / 황 미 숙 ​ ​ ​ 그릇 1 / 오 세 영 ​ ​ ​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 ​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 ​ ​ ​

두렵지만 머물고 싶은 시간 / 은 시 영

그림 / 박 종 식 ​ ​ ​ ​ 두렵지만 머물고 싶은 시간 / 은 시 영 ​ ​ ​ 두렵지만 머물고 싶은 시간 그건 사랑의 시간이었다. ​ 바람은 언제나 나에게 속삭임으로 진실을 말해줬지만 ​ 나는 바람의 진실을 듣지 않았다. ​ 그리고는 또 이렇게 아픈 시간들이 나를 지나간다. ​ 나의 눈물은 시가 되고 시는 그대가 되어 다시 내 안에 머문다. ​ 그리고 눈물 가득한 나에게 바람은 다시 속삭여준다. ​ 눈물, 그것은 아무나 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 늦은 것도 같지만 이번 바람의 위로를 나는 놓치기 싫었다. ​ ​ ​ ​ ​ ( 신춘문예 당선작 / 2021, 경인일보 ) ​ ​ ​

코뿔소 / 나 호 열

그림 / 박 삼 덕 ​ ​ ​ ​ 코뿔소 / 나 호 열 ​ ​ 둥글둥글 살아가려면 적이 없어야 한다고 하시다가도 생존은 싸늘한 경쟁이라고 엄포도 놓으시던 어머님의 옳고도 지당하신 말씀 고루고루 새기다가 어느새 길 잃어 어른이 되었다 좌충우돌 그놈의 뿔 때문에 피헤서 가도 눈물이 나고 피하지 못하여 피 터지는 삿대질은 허공에 스러진다 이 가슴에 얹힌 묵직한 것 성냥불을 그어대도 불붙지 않는 나의 피 채찍을 휘둘러도 꿈적을 않는 고집불통 코뿔소다 힘 자랑하는 코뿔소들 쏟아지는 상처를 감싸쥐고 늪지대인 서울에 서식한다 코뿔소들이 몰래 버리는 이 냄새나는 누가 코뿔소의 눈물을 보았느냐 ​ ​ ​ ​

내가 나의 감옥이다 / 유 안 진​

그림 / 현 춘 자 ​ ​ ​ ​ ​ 내가 나의 감옥이다 / 유 안 진 ​ ​ ​ 한눈팔고 사는 줄을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 언제 어디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을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 가시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편견이 시쿵둥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 ​ ​ ​ 유안진 시집 / 다보탑을 줍다 ​ ​ ​ ​ ​ ​ ​ ​

네가 좋다 참말로 좋다 / 용 혜 원

그림 / 김 정 수 ​ ​ ​ ​ 네가 좋다 참말로 좋다 / 용 혜 원 ​ ​ ​ 네가 좋다 참말로 좋다 이 넓디넓은 세상 널 만나지 않았다면 마른나무 가지에 앉아 홀로 울고 있는 새처럼 외로웠을 것이다 ​ 너를 사랑하는데 너를 좋아하는데 내 마음은 꽁꽁 얼어버린 것만 같아 사랑을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속 타는 마음을 어찌하나 ​ 모든 계절은 지나가도 또다시 돌아와 그 시절 그대로 꽃피어나는데 우리들의 삶은 흘러가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어 사랑을 하고픈 걸 어이하나 ​ 내 마음을 다 표현하면 지나칠까 두렵고 내 마음을 다 표현 못하면 떠나가 버릴까 두렵다 ​ 나는 네가 좋다 참말로 좋다 네가 좋아서 참말로 좋아서 사랑만 하고 싶다 ​ ​ ​ ​ 용혜원 시집 / 지금은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 ​ ​ ..

붉디붉은 그 꽃을 / 나 희 덕

그림 / 정 화 숙 ​ 나희덕 시집 / 사라진 손바닥 ​ ​ 붉디붉은 그 꽃을 / 나 희 덕 ​ ​ ​ 산그늘에 눈이 아리도록 피어 있던 꽃을 어느새 나는 잊었습니다 검게 타들어가며 쓰러지던 꽃대도, 꽃대도 받아 삼키던 흙빛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바위에 남겨진 총탄자국도, 꽃 속에 들리던 총성도, 더는 내 마음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 다, 잊었습니다, 잊지 않고는 그의 잎으로 피어날 수 없어 상상화인지 꽃무릇인지 이름조차 잊었습니다 꽃과 잎이 서로의 죽음을 볼 수 없어야 비로서 피어날 수 있다기에 붉디붉은 그 꽃을 아주 잊기로 했습니다 ​ ​ ​ 나희덕 시집 / 사라진 손바닥 ​ ​ 사진 / 정 관 용

감자떡 / 이 상 국

그림 / 조 은 희 ​ ​ ​ ​ ​ 감자떡 / 이 상 국 ​ ​ ​ 하지가 지나면 성한 감자는 장에 나가고 다치고 못난 것들은 독에 들어가 ​ ​ 가을까지 몸을 썩혔다 헌 옷 벗듯 껍질을 벗고 ​ 물에 수십 번 육신을 씻고 나서야 그들은 분보다 더 고운 가루가 되는데 ​ 이를테면 그것은 흙의 영혼 같은 것인데 강선리 늙은 형수님은 ​ 아직도 시어머니 제삿날 그걸로 떡을 쪄서 우리를 먹이신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