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율 종점의 추억 / 나호열 가끔은 종점을 막장으로 읽기도 하지만 나에게 종점은 밖으로 미는 문이었다 자정 가까이 쿨럭거리며 기침 토하듯 취객을 내려놓을 때 끝내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귀잠 들지 못하고 움츠려 서서 질긴 어둠을 씹으며 새벽을 기다리는 버스는 늘 즐거운 꿈을 선사해 주었다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얼마나 큰 설렘인가 서강행(西江行) 이름표를 단 버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유년을 떠나갔지만 서강은 출렁거리며 내 숨결을 돋우었다 그곳에 가면 아버지를 만날까 이윽고 내가 서강에 닿았을 때 그곳 또한 종점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몸에 잠들어 있던 아버지가 새살처럼 돋아 올랐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말한다 이 세상에 종점은 없다. 나호열 시집 / 눈물이 시킨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