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2022/04 28

히말라야의 노새 / 박경리

그림 / 박혜숙 ​ ​ ​ ​ 히말라야의 노새 / 박경리 ​ ​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 ​ ​ ​ ​ 박경리 유고 시집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 ​ ​

비가 (3) / 이승희

그림 / 장주원 ​ ​ ​ ​ 비가 (3) / 이승희 ​ ​ ​ 너를 만나면 나의 가슴은 항상 물이된다 우수 띤 눈자욱 깊숙한 예감 ​ 온 몸으로 울며 쏟아놓은 마디마디 작은 조각인 양 영혼을 가른다 ​ 타던 가슴 제몫으로 사르고 이별 앞에선 아름다운 단절 ​ 끝내 어둠 내리면 등줄기 흐르는 조용한 비가 등불로 길거리에 내린다 ​ ​ ​ 이승희 시집 / 쓸쓸한 날의 자유 ​ ​ ​ ​

꽃을 보려면 / 정 호 승

그림 / 문지은 ​ ​ ​ ​ 꽃을 보려면 / 정호승 ​ ​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 ​ ​ 정호승 시집 /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 ​ ​ ​ ​

바람이고 싶다 / 전길중

그림 / 문지은 바람이고 싶다 / 전길중 안개꽃에 둘러싸인 장미꽃 그 속에 잠든 바람이고 싶다 잠시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더우나 추우나 떨림을 지니고 누군가에 안기고 싶은 바람이다 꾸밈없는 얼굴 투명한 마음 신성한 야성 잠시의 멈춤도 허용되지 않아 방향을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이다 지치면 어느 숲에 머물러 아픔을 다독이는 바람이고 싶다 *바람은 멈추는 순간 죽음이다 시집 / 그까짓게 뭐라고

눈물 선행 / 이상국

그림 / 김창열 눈물 선행 / 이상국 연말이 되어 나도 선행을 했다 누군가 고학생 시절 거저먹은 홍합 한 그릇 값으로 몇십 년 뒤 수백만원을 내놓았다고 한다 눈시울이 젖었다 아, 거리의 뜨거운 홍합 국물 세상에 갚아야 할 게 너무 많은데 나는 얼마나 인색했던지 산다는 게 늘 누군가에게 미안한 일이므로 아무에게나 조금만 잘해주면 되는데 나는 안 하면서 남이 하면 눈물이 난다 *1946년 강원 양양 출생 *1976년 으로 등단 *시집 시선집등이 있다 *2013년 제2회 박재삼문학상 *2012년 정지용 문학상 *2011년 제6회 불교문예작품상 수상

​폭포 / 나호열

​ ​ ​ 폭포 / 나호열 ​ ​ ​ 수만 마리의 푸른 말들이 가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떨어질 때 그때 그 말들은 천마가 된다 천마가 되면서 순간, 산화하는 꽃잎들은 젊은 날 우리들은 얼마나 눈부시게 바라보았던가 아무에게도 배운 적 없는 사랑의 꿈틀거림이 천 길 아래로 우리를 떠밀어내었던가 그 푸른 말들이 하염없이 흘러서 한 가슴을 적시기라도 했단 말인가 ​ 추락이 두려워서 아니 밑바닥까지 추락해버린 한 사내가 폭포를 더듬어 올라가고 있다 물방울들이 수만 마리의 연어들처럼 꿈틀대면서 하늘을 오르는 계단을 헛딛고 있다 얼굴에 엉겨붙은 물보라 그 소리가 하늘에 박혀 있는 새들의 날개처럼 펄럭거린다 ​ 이미 황혼인 것이다 ​ ​ ​ 나호열 시집 / 타인의 슬픔 ​ ​ ​ ​ ​

첫눈 / 조하은

그림 / 바실리 칸딘스키 ​ ​ ​ 첫눈 / 조하은 ​ ​ 육성회비 봉투 비어 있는 채로 들고 간 날 등을 떠민 담임선생님은 빈 봉투 대신 들고 온 날고구마로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 빈 봉투와 생고구마가 날아오르던 교실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 의자를 들고 벌을 섰다 ​ 미열이 온몸으로 흘러들어와 마구 돌아다녔다 헛것이 보였다 운동장 귀퉁이 사시나무도 시름시름 앓았다 달아오르는 날이었다 ​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 ​ ​ ​ 조하은 시집 / 얼마간은 불량하게 *충남 공주 출생 *2015년 (시에티카)로 등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