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김화숙 벽이 온다 / 박설희 밧줄에 의지해 암벽 하나를 간신히 넘어왔는데 또 밧줄이 드리워져 있다 얼마나 가야 하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벽이 온다 한 손 한 손 되짚어 내려간다 내려갈 힘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되었을 때 절벽에 서 있는 소나무, 꺾는 각도가 절묘하다 공중을 더듬으며 길 찾는 목숨들 낭떠러지를 품고 산다 끝이라는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 씨앗을 잉태하는 것도 그 이유 절벽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나무마다 절벽이 있다 빛의 화살은 길고 짧아서 목마르게 휘어지는 행로 파르르 떨던 나뭇가지 하나가 방금, 방향을 조금 틀었다 박설희 시집 / 가슴을 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