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벽이 온다 / 박설희

푸른 언덕 2023. 5. 7. 18:42

그림 / 김화숙

벽이 온다 / 박설희

밧줄에 의지해 암벽 하나를 간신히 넘어왔는데

또 밧줄이 드리워져 있다

얼마나 가야 하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벽이 온다

한 손 한 손 되짚어 내려간다

내려갈 힘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되었을 때

절벽에 서 있는 소나무, 꺾는 각도가 절묘하다

공중을 더듬으며 길 찾는 목숨들

낭떠러지를 품고 산다

끝이라는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

씨앗을 잉태하는 것도 그 이유

절벽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나무마다 절벽이 있다

빛의 화살은 길고 짧아서

목마르게 휘어지는 행로

파르르 떨던 나뭇가지 하나가

방금, 방향을 조금 틀었다

박설희 시집 / 가슴을 재다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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