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성기혁
양쪽 귀를 접은 페이지 / 김혜순
엄마, 이 페이지는 읽지마
읽지 말라고 접어놓은 거야
새들이 뾰족한 부리를 하늘에 박고 눈물을 떨어뜨리네
새를 불게 하라
때려서라도 불게 하라
명령이
타이핑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받아쓴 건 맥박보다 더 빠른 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였는데
젖은 발가락이
내 얼굴을 더듬고
혀도 입술도 없는 내가
제발 살려주세요
이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는 버튼이 없고
영안실은 물속에 있습니다만
부엌에서 너를 때렸을 때
새를 때리는 것 같았어
말하는 엄마
다 맞고 나서 너는
방으로 들어가
가만히 날개를 폈지
이것아
불쌍한 것아
(세상의 모든 신호등이 붉은색을 켜 든 고요한 밤
나는 엄마를 따라간다
나는 물속의 깊은 방문을 연다
거기 고요한 곳 엄마가 아가에게 젖을 물리고 일렁이는 곳)
남의 머리를 억지로 목에 얹은 것처럼
까다까닥하는
새야
작은 새야
이것아
김혜순 시집 / 날개 환상통 <문학과 지성>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계장터 / 신경림 (17) | 2023.05.15 |
---|---|
종이 배를 타고 / 정호승 (22) | 2023.05.14 |
수레 / 최금진 (32) | 2023.05.10 |
벽이 온다 / 박설희 (31) | 2023.05.07 |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베르톨트 브레히트 (25) | 2023.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