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김화숙
벽이 온다 / 박설희
밧줄에 의지해 암벽 하나를 간신히 넘어왔는데
또 밧줄이 드리워져 있다
얼마나 가야 하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벽이 온다
한 손 한 손 되짚어 내려간다
내려갈 힘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되었을 때
절벽에 서 있는 소나무, 꺾는 각도가 절묘하다
공중을 더듬으며 길 찾는 목숨들
낭떠러지를 품고 산다
끝이라는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
씨앗을 잉태하는 것도 그 이유
절벽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나무마다 절벽이 있다
빛의 화살은 길고 짧아서
목마르게 휘어지는 행로
파르르 떨던 나뭇가지 하나가
방금, 방향을 조금 틀었다
박설희 시집 / 가슴을 재다 <푸른사상>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쪽 귀를 접은 페이지 / 김혜순 (10) | 2023.05.12 |
---|---|
수레 / 최금진 (32) | 2023.05.10 |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베르톨트 브레히트 (25) | 2023.05.06 |
엄마 / 정채봉 (27) | 2023.05.05 |
들 향기 피는 길 / 서현숙 (29) | 2023.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