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수레 / 최금진

푸른 언덕 2023. 5. 10. 20:24

 

그림 / 이종석

 

 

 

 

 

수레 / 최금진

 

 

그의 아버지 처럼

그도 나면서부터 하반신에 수레가 달려 있었다

당연히,

커서 그는 수레 끄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폐품을 찾아 개미굴 같은 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바퀴에 척척 감기기만 할 뿐 결코 떨어지지 않는 길을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제 자신과 함께 다녔다

지겨워한 적도, 사랑한 적도 없었다

외발, 외발, 황새처럼 골라 디디며

바닥만 보고 걸었다

 

아랫도리에 돋아난 다 삭아빠진 수레를 굴리며

덜덜덜 몸을 떨면서 방바닥 식은 집에 돌아오곤 했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의 뼈 몇개는 바큇살처럼 부러져 있었다

허리춤에 붙은 손잡이를 한번도 놓아본 적 없는

그에겐 언제나 고장나고 버려진 것들이 쌓여 있었다

아무도 대신 끌어주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자신의 낡은 몸뚱이를

무슨 망가진 문짝처럼 싣고 다니고 있었다

내리막길을

바들바들 떨리는 종아리로 버티며

자신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최금진 시집 / 새들의 역사

 

 

 

 

2~3일 먼 길을 다녀옵니다. 답방이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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