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양쪽 귀를 접은 페이지 / 김혜순

푸른 언덕 2023. 5. 12. 15:04

 

그림 / 성기혁

 

 

 

 

 

양쪽 귀를 접은 페이지 / 김혜순

 

 

엄마, 이 페이지는 읽지마

읽지 말라고 접어놓은 거야

 

새들이 뾰족한 부리를 하늘에 박고 눈물을 떨어뜨리네

 

새를 불게 하라

때려서라도 불게 하라

명령이

타이핑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받아쓴 건 맥박보다 더 빠른 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였는데

 

젖은 발가락이

내 얼굴을 더듬고

혀도 입술도 없는 내가

제발 살려주세요

 

이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는 버튼이 없고

영안실은 물속에 있습니다만

 

부엌에서 너를 때렸을 때

새를 때리는 것 같았어

말하는 엄마

 

다 맞고 나서 너는

방으로 들어가

가만히 날개를 폈지

 

이것아

불쌍한 것아

 

(세상의 모든 신호등이 붉은색을 켜 든 고요한 밤

나는 엄마를 따라간다

나는 물속의 깊은 방문을 연다

거기 고요한 곳 엄마가 아가에게 젖을 물리고 일렁이는 곳)

 

남의 머리를 억지로 목에 얹은 것처럼

까다까닥하는

 

새야

작은 새야

 

이것아

 

 

 

 

 

김혜순 시집 / 날개 환상통 <문학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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