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혼자서 / 김소연

푸른 언덕 2022. 6. 8. 19:02

 

그림 / 황수빈

 

 

 

 

혼자서 / 김소연

 

 

상가의 컴컴한 내부가 최대한 컴컴해진다

칼을 대어 틈새를 도려낸 듯 빛이 새어 나와도

 

간절함은 저렇게 표현돼야 한다

최대한 입을 꽉 다문 채

 

빰에 접착된 핸드폰을 꼭 감싸고

최대한 고개를 숙인 저 사람처럼

 

귀는 아가미가 되었다

물고기가 되었다

흘러 다녔다

 

현수막은 최대한 환해진다

달은 관람자처럼 최대한 가까이 다가온다

 

저 마네킹은 눈동자가 있다

저 조각상은 눈동자가 없다

 

최대한 인간을 닮기 위해서

 

밤은 가장 춥다

분노는 이런 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최대한 급진적으로

 

집은 구겨진다

쓰레기차가 쓰레기봉투를 쓸어 담듯

마지막 아버지를 최대한 쓸어 담고서

 

컴컴한 내일이 박스처럼 쌓여 있다

오늘이 내일을 벼랑으로 데려간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온다

휙, 내 냄새가 난다

 

 

 

 

 

김소연 시집 / 수학자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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