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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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원 / 박 순

바람의 사원 / 박 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구부러진 길을 갈 때 몸은 휘어졌고발자국이 짓밟고 지나간 자리에는 꽃과 풀과 새의 피가 흘렀다바람이 옆구리를 휘젓고 가면돌멩이 속 갈라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바람의 늑골 속에서 뒹구는 날이 많았다바람이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고 채찍질을 하면 바람보다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었다질주본능으로 스스로 박차를 가했던 시간들옆구리의 통증은 잊은 지 오래일어나지 못하고 버려졌던검은 몸뚱이를 감싼 싸늘한 달빛그날 이후내 몸을 바람의 사원이라 불렀다 ​​  시집 / 바람의 사원

루주가 길을 나선다 / 이 효

​​루주가 길을 나선다 / 이 효​​​잊혀진 한 사람이 그리울 때 안부는 붉다 시작과 끝은 어디쯤일까 헤어질 때, 떨어진 저 침묵 루주가 진해질수록 그리움의 변명은 파랗다 인연은 호수에 배를 띄워 다가가는 것 거울 앞 침침한 시간들 부러진 루주 끝에도 심장은 뛴다  내가 먼저 길을 나서는 것은  슬픔과 후회가 거기 있기 때문 운명을 바른다​​​​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묵과 어머니 / 이효

묵과 어머니 / 이효간병인이 사라진 날 척추가 불안한 어머니 집 딸만 보면 묵을 쑨다 수직 궤도 벗어난 꼬부라진 허리 싱크대에 매달려 추가 된다 끈끈한 묵 나무 주걱으로 세월만큼 휘젓는다 불 줄여라 엄마의 잔소리는 마른 젖 오래 저어라 끈기 있게 살라는 말씀 쫀득하다 어머니 묵 그릇 같은 유언 눈동자에 싸서 집으로 가져온다 풀어보니 검게 탄 일생이 누워 있다 입안에서 엄마 생각이 물컹거린다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날개 없는 앵무새 / 이효

날개 없는 앵무새 / 이효 아침마다 지하철을 타는 남자파스만 한 카드를 댄다 앵무새가 낡은 가방을 마중 나온다 행복하세요 띡낡은 등산복이 지나간다행복하세요 띡 김밥 한 줄 든, 검정 비닐봉지 간다행복하세요 띡 허공에 무수하게 뿌려진 마른 말들 도시는 절망을 버릴 시간도 없다 행복은 허공에 썰물로 빠져나가는데날개도 없는 앵무새여! 잠잠하라 지하철 게이트를 지나는 순간 수천 마리의 심장 없는 앵무새 목소리 행복하세요 띡행복하세요 띡 띡행복하세요 띡 띡 띡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4.12.25

숟가락을 놓다 / 이 효

그림 / 정도나숟가락을 놓다 / 이 효​낡은 부엌문 바람이 두들기는데빈 그릇에 바람 소리 말을 더듬고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둥근 밥상에 수저 두 개 올려놓고비린내 나는 생선을 굽는다할머니 나물 팔던 손으로부엌문 활짝 열어 놓았다​바람은 잠시 단추를 채우고 나간다그림자 된 춥고 외로운 사람들쓰러진 술병처럼 몸이 얼었다 녹는다산산이 발려진 생선 가시의 잔해들​무표정한 가시를 모아 땅에 묻는다상처 난 것들 위로 첫눈이 내린다​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부엌에 온기를 넣는 것​​​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

뭉크의 절규 / 이효

뭉크의 절규 /  이효두렵다는 것은 슬픈 것이다어미를 넘어트린 덩치 큰 염소칠판 위에 붙은 교훈 분필 가루가 되어 교실 안이 술렁인다무질서는 유죄일까? 무죄일까?옆구리 차기로 운동화 날아오고 교사의 비명은 털이 뽑혔다글썽인다, 겁에 질린 어린 눈망울들밟지 말아야 할 스승의 그림자는 구석기시대 유물이 되어 밟힌 지 오래다 병원으로 실려간 어미는 암막 커튼을 친다다시 초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뭉크는 불안한 내일을 다시 부르고 있다이효 시인  / 장미는 고양이다

새해가 내려요 / 이효

새해가 내려요 / 이효 꿈틀거리는 지난 시간의 내장들끊어진 소통 위로 눈이 내린다 방전된 몸으로 새해를 넘어온 사람들아픈 손톱에 첫눈을 발라준다뽀얀 속살이 차곡차곡 쌓인 달력을 단다 말풍선에 매달린 섬들은 소통하고유리벽을 타는 용서가 녹아내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가 찰칵 찍어 놓은, 첫눈 오는 날핸드폰 속에서 풍겨오는 사람 내음눈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그렁한 눈발로 묻는다 까똑 까똑 까똑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콩고강 연가 / 이효

그림 / 박정실콩고강 연가 / 이 효 야자수는 홀로 노래 부른다고향은 외딴섬 수평선 너머 흑백 사진으로 몸살 앓는다 하루 종일 숲에서 서성이며고향의 소리를 더듬는다 마음 밭에 그리움이 붉다 숲은 한 방울의 눈물로 푸른 옷을 갈아입는다기억의 장소로 떠날 채비를 한다 섬과 섬 사이, 뼈마디로 다리를 놓는다홀로 출렁거렸을 침묵의 물결그리움은 먼 하늘이 된다 나무의 오랜 꿈, 석양에 쓰는 편지 슬프지만 잘 견디어 냈노라고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