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조대현 번역자 / 장혜령 이 숲에는 먼 나무가 있다 흑송이 있고 물푸레나무가 있다 가시 사이로 새어드는 저녁 빛이 있고 그 빛에 잘 닦인 잎사귀가 있다 온종일 빛이 닿은 적 없는 내부에 단 한 순간 붉게 젖어드는 것이 슬픔처럼 가만히 스며드는 것이 있다 저녁의 빛은 숲 그늘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만들었다 그 속에 새 그림자 하나 날개짓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비릿한 풀냄새가 난다 불타버린 누군가의 혼처럼 이 시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이곳을 스쳐지나가고 있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꿈속에서 물위에서 나를 적는 사람 흔들리면서 내게 자꾸 편지를 보내는 사람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 장혜령 시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