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번역자 / 장혜령

푸른 언덕 2023. 1. 23. 09:25

그림 / 조대현

번역자 / 장혜령

이 숲에는

먼 나무가 있다

흑송이 있고 물푸레나무가 있다

가시 사이로 새어드는

저녁 빛이 있고

그 빛에 잘 닦인 잎사귀가 있다

온종일

빛이 닿은 적 없는 내부에

단 한 순간

붉게 젖어드는 것이

슬픔처럼 가만히 스며드는 것이 있다

저녁의 빛은

숲 그늘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만들었다

그 속에

새 그림자 하나

날개짓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비릿한 풀냄새가 난다

불타버린 누군가의 혼처럼

이 시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이곳을 스쳐지나가고 있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꿈속에서

물위에서 나를 적는 사람

흔들리면서

내게 자꾸 편지를 보내는 사람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

장혜령 시집 /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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