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실패에 대하여 / 정호승

푸른 언덕 2023. 6. 19. 19:27

그림/ 박인호

실패에 대하여 / 정호승

실패는 나의 애인이다

결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애인이다

나는 애인의 손을 잡지 않으려고

맨발로 도망쳐 왔으나 결국

애인의 손에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나는 전생에서도 실패했다

전생했어도 인간으로 태어나

불행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는 일에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실패한테 무릎을 꿇고 울었다

실패한 뒤에는 꼭 비가 온다

우산을 펼치면 우산살 또한 부러져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실패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당신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실패에 부고장은 오지 않는다

신문 부고란에 실패의 별세 소식은 없다

실패는 이제 나의 나다

사랑하지 않는 애인도 애인이다

실패한 사랑도 사랑이다

정호승 시집 / 슬픔이 택배로 왔다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린아이 / 빅토르 마리 위고  (28) 2023.06.21
단비 / 박준  (28) 2023.06.20
라라를 위하여 / 이성복  (23) 2023.06.18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베르톨트 브레히트  (24) 2023.06.17
​잠수 潛水 / 이어령  (18) 2023.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