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노의웅
바람, 오월 / 김명희
또 다시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어떤 물방울이든
나뭇가지나 새벽의 어둠을 통과하지 못하면
제 속도를 얻지 못한다
바람소리들은 어디서나 금속으로 변했다
나뭇잎들 변성기의 음성처럼 들썩들썩 짙어졌고
책장을 덮으면 그늘이 시작되는 곳으로
낡은 관절들의 이동은 오후 내내 바빠졌다
눈 먼 서랍들마다 외출을 서두르는 넋두리로 가득했고
마음으로부터 한 뼘만 부주의해도 푸른 물이 들었다
쓰레기들의 낮은 지대에서 누군가 휘파람을 분다
곧, 저녁이 될 것이고 노인들 몇은
몸 속 더 깊은 곳의 뼈 속까지 바람을 저장하곤
반신의 기울기로 돌아왔다
5월이 왔다, 바람들은 쉽사리 물들었고
또 다시 5월이 왔다
개구리 소년들은 80대의 브라운관 속으로
영영 사라졌는지 늦은 밤 칼라티비 속에선
흑백의 논두렁만 길게 울고 있었다
김명희 시집 / 화석이 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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