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 Alessandro Tamponi
거지 / 뚜르게네프 Turgenev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늙은 거지 하나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물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옷,
더러운 상처,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렇게 처참히 이 사람을 갉아먹는 것일까!
그는 신음하듯 동냥을 청한다.
나는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져 보았다.
지갑도 없다. 시계도 없다. 손수건마저도 없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지는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내민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그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려"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그는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하고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 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뚜르게네프 Turgenev
(1818년~1883년, 러시아 작가)
김율도 시집 / 가끔은 위로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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