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저녁의 염전 / 김 경 주

푸른 언덕 2022. 1. 14. 17:27

그림 / 전 지 숙

저녁의 염전 / 김 경 주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 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이 쇄골을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퍼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힌 물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을 본다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지 / 뚜르게네프 Turgenev  (0) 2022.01.16
호수 / 이바라기 노리코  (0) 2022.01.15
등에 관하여 푼다 / 박 순  (0) 2022.01.13
천관 (天冠) / 이대흠  (0) 2022.01.12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 정호승  (0) 202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