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기전
유월의 독서 / 박준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는 한 일 년을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 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
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
저녁이 되면
그 집의 불빛은
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
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먼 능선 위를 나는 새들도
제 눈 속 가득 찬 물기들을
그 빛을 보며 말려가겠다
책장을 덮어도
눈이 자꾸 부시던
유월이었다
박준 시집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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