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송태관
그림자 / 천양희
마음에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마른가지 몇개 분질렀습니다
그래도 꺾이지 않는 건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오솔길에 듭니다
바람 부니 풀들이 파랗게 파랑을 일으킵니다
한해살이 풀을 만날 때쯤이면
한 시절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나는 그만 풀이 죽어
마음이 슬플 때는 지는 해가 좋다고
말하려다 그만두기로 합니다
오솔길은 천리로 올라오는
미움이란 말을 지웁니다
산책이 끝나기 전
그늘이 서늘한 목백일홍 앞에 머뭅니다
꽃그늘 아래서 적막하게 웃던 얼굴이 떠오릅니다
기억은 자주 그림자를 남깁니다
남긴다고 다 그림자이겠습니까
'하늘 보며 나는 망연히 서 있었다'
어제 써놓은 글 한줄이
한 시절의 그림자인 것만 같습니다
*목백일홍 (배롱나무)
배롱나무 꽃은 여름에서 가을까지 계속 핀다
시집 / 지독히 다행한 <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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