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문화일보 2021 신춘문예 시) / 남수우

푸른 언덕 2021. 11. 17. 02:18

그림 / 톰 안홀트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문화일보 2021 신춘문예 시) / 남수우

 

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

자신의 뒷모습이었네

그는 그 먼 곳을 안으러 간다고 했다

절뚝이며 그가 사라진 거울 속에서 내가 방을 돌보는 동안

거실의 소란이 문틈을 흔든다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들킬까 봐

자꾸만 귀가 자랐다

문밖이 가둔 이불 속에서

나는 한쪽 다리로 풍경을 옮기는 사람을 본다

이곳이 아니길

이곳이 아닌 나머지이길

중얼거릴수록 그가 흐릿해졌다

이마를 기억한 손이 거울 끝까지 굴러가 있었다

거실의 빛이 문틈을 가를 때 그는 이 방을 겨눌 것이다

번쩍이는 총구를 지구 끝까지 늘리며

제 뒤통수를 겨냥한다 해도 누구의 탓은 아니지

거울에 남은 손자국을 따라 짚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게 뒷모습을 안겨주던 날 모서리가 처음 삼킨 태양을 생각했다

흉터를 간직한 햇살이

따갑게 몸 안을 맴돌고 있을 거라고

뒷모습뿐인 액자를 돌려세운다

거울 속에는

하얀 입김으로 떠오른 민낯들이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