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 효
어머니는 수국화였다 / 권 정 일
그때 나는 세모시 저고리에서 달빛보다 더 선연한
바늘의 등뼈가 휘어지는 것을 보았다.
열 손가락 관절이 삐걱이는 소리를 들었다.
수묵화처럼 가지런한 이마가 환한 빛을 내던 토방 쪽마루를 보았다.
어머니 반짇고리 곁에는 내가 이름 지어준 별들이
내려와 집을 짓곤 했다.
못에 찔려 피 흘리던 내 꿈들 우리집 추녀 끝에 밤마다 찾아드는 바닷소리를 들었다.
한 채 섬이 된 우리집 마당으로 물방울처럼
별 하나 별 둘 똑똑 떨어지는 기척이 있었다.
옛날 이야기가 섬이 되어 떠다니고
푸른 슬레트 지붕이 녹스는 소리마저 정겨운 여름밤이었다.
흑싸리 화투패 같은 빈 껍질의 어머니
가슴에서도 녹스는 소리가 들렸다.
어쩜 그것은 내 가슴팍을 적시는 물살이었다.
추깃물 같은 반딧불이 우리집 낮은 담장 너머에서 몇 번 어둠을 흔들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권정일 시인 약력>
* 1961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
* 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어머니는 수묵화였다〉 당선
* 2003년 국제사화집 <숲은 길을 열고>발간
* 시집 <마지막 주유소> (현대시, 2004)와 <수상한 비행법> (북인, 2008)
* 2009년 부산 작가상 수상
* 2011년 제1회 김구용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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