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어머니는 수국화였다 / 권 정 일

푸른 언덕 2021. 11. 17. 19:08

 

 
그림 / 이 효

 

 

 

 

어머니는 수국화였다 / 권 정 일

 

 

그때 나는 세모시 저고리에서 달빛보다 더 선연한

바늘의 등뼈가 휘어지는 것을 보았다.

열 손가락 관절이 삐걱이는 소리를 들었다.

수묵화처럼 가지런한 이마가 환한 빛을 내던 토방 쪽마루를 보았다.

어머니 반짇고리 곁에는 내가 이름 지어준 별들이

내려와 집을 짓곤 했다.

못에 찔려 피 흘리던 내 꿈들 우리집 추녀 끝에 밤마다 찾아드는 바닷소리를 들었다.

한 채 섬이 된 우리집 마당으로 물방울처럼

별 하나 별 둘 똑똑 떨어지는 기척이 있었다.

옛날 이야기가 섬이 되어 떠다니고

푸른 슬레트 지붕이 녹스는 소리마저 정겨운 여름밤이었다.

흑싸리 화투패 같은 빈 껍질의 어머니

가슴에서도 녹스는 소리가 들렸다.

어쩜 그것은 내 가슴팍을 적시는 물살이었다.

추깃물 같은 반딧불이 우리집 낮은 담장 너머에서 몇 번 어둠을 흔들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권정일 시인 약력>

 

* 1961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

* 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어머니는 수묵화였다〉 당선

* 2003년 국제사화집 <숲은 길을 열고>발간

* 시집 <마지막 주유소> (현대시, 2004)와 <수상한 비행법> (북인, 2008)

* 2009년 부산 작가상 수상

* 2011년 제1회 김구용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