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코로나 5

비 내리는 경춘선 숲길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 밤새워 쓴 긴 편지는 물에 젖고 ​ 가을은 느린 호흡으로 온다. ​ 목을 떨구는 짧은 문장들 ​ 곱디고운 백일홍은 긴 편지지에 ​ 젖은 마음 곱게 써 내려간다. ​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는데 ​ 청춘의 꿈은 저리도 화안한데 ​ 빌어먹을 세월 곱기도 해라. ​ 소리 없이 혼자 우는 사내들 ​ 환한 미소로 매달리는 어린 자식들 ​ 넘어져도 한 걸음씩 용기 내서 가자. ​ 사내는 아직도 건장하다. ​ 울지 마라! 코로나로 무너진 터전 일구자. ​ 매일 새벽마다 가꾸고 또 가꾼다. ​ 남몰래 흘린 눈물, 상처가 아물고 ​ 소박한 일상을 피어 올린다. ​ 가슴이야 피멍이 들었지만 ​ 그 타오르는 불길, 사자의 포호처럼 ​ 새로운 출발을 한다. ​ ..

멀리서 오신 손님 (문배 마을 )

​ 가끔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 ​ ​ 코로나 상황에서 식당을 어디로 잡아야 하나? 요리를 잘 하지도 못하니 집에서 식사 대접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 ​ 필리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교수님 남편의 동창이다. ​ ​ 부모님을 잠시 뵈러 한국에 들어왔다가 코로나로 발이 묶였다. ​ ​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도 기쁘지만 남편은 기억에 남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한다. ​ ​ 서울서부터 차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서 왔다. ​ ​ 손님은 어디로 자꾸 끌고 가느냐고 묻는다. 남편은 묻지 말란다. 물으면 다친단다. 물론 장난치는 말투 속에서 서로 웃고 있음을 느낀다. ​ ​ 차는 가평을 지나서 점점 산속으로 올라간다. ​ ​ 얼마나 산을 차로 올라왔을까? 문배마을은 옛날에 화전민들이 살았던 마을이..

정릉천 따라 걷기

코로나로 인해서 여행도 자유롭게 갈 수 없고 문화 공연도 취소되고, 송년 모임도 취소되고 내가 최근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동네를 매일 산책하는 일이다. 그런데 매일 같은 곳, 같은 장소를 걷는 일도 너무 지루한 것 같다. 사람들은 매일 잘도 걷는데 호기심이 강한 나는 자꾸 집 주변을 벗어난다. 오늘은 정릉천을 따라서 걸어보았다. 이 동네는 또 어떤 풍경을 내게 보여줄까?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정릉천 보행자 통로 정릉천 자건거 도로 삼각산 계곡물이 내려와서 월곡천을 만난다. 귀여운 버섯 닮은 모자들 개천 바닥에 돌들이 많이 깔려있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서 나무다리가 보인다. 호기심이 생겨서 다리를 건너가 보았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하천 위에서 찍은 공업사 요즘 서울에서 이런 풍경을 보다니..

화악산 아래서 (자작 시)

화악산 아래서 / 이 효 터널을 빠져나오면 아담한 정자 하나 정자 옆 작은 연못 송사리 떼 지어 피었다. 여름은 산자락 움켜잡고 파란 하늘로 달아난다 계곡의 찬바람은 등을 타고 허기를 채운다. 불량한 세상 언제쯤 코로나 터널 빠져나오려나? 문짝 없는 정자 옆 꽃노래 듣고 싶어라 송사리 떼 잡으러 가는 바람 부서진 사람들 마음 엉거주춤 끌어올린다 해 질 녘 구름을 더듬듯 마음을 꽃그늘 아래 잠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