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님이 오시는 날 / 이 효 그림 / 신 종식 눈님이 오시는 날 / 이 효 불온한 세상 곱게도 오시네 낮아지고 또 낮아지고 인간은 사랑인 줄 모르고 밟고 가네 하얀 발자국 위에 너와 내가 서로 엉켜 용서를 배운다 일기장이 하얗다 12월의 마지막 눈이 술에서 깬다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문학이야기/자작시 2022.12.15
조그만 사랑 / 황동규 그림 / 강애란 조그만 사랑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와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김용택이 사랑한 시 / 시가 내게로 왔다 문학이야기/명시 2022.08.13
대결 / 이 상 국 그림 / 김 정 수 대결 / 이 상 국 큰 눈 온 날 아침 부러져나간 소나무를 보면 눈부시다 그들은 밤새 뭔가와 맞서다가 무참하게 꺾였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공손하게 몸을 내맡겼던 게 아닐까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눈의 무게를 받으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빛나는 자해(自害) 혹은 아름다운 마감 나는 때때로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이상국 시집 / 국수가 먹고 싶다 문학이야기/명시 2021.10.29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 글로리아 밴더빌트 그림 / 김 복 연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 글로리아 밴더빌트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외로운 여름과 거짓 꽃이 시들고도 기나긴 세월이 흐를 때 사랑은 천천히 오는 것 얼어붙은 물속으로 파고드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조용히 내려앉는 눈과같이 조용히 천천히 땅속에 뿌리박는 풀처럼 사랑은 더디고도 종용한 것 내리다가 흩날리는 눈처럼 사랑은 살며시 뿌리로 스며드는 것 씨앗이 싹트듯 달이 커지듯 천천히 시집 / 매일 시 한 잔 문학이야기/명시 2021.10.05
고요한 귀향 / 조 병 화 그림 / 김 희 정 고요한 귀향 / 조 병 화 이곳까지 오는 길 험했으나 고향에 접어드니 마냥 고요하여라 비가 내리다 개이고 개다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다 폭설이 되고 폭설이 되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홍수가 되다 가뭄이 되고 가을 겨울이 되면서 만남과 이별이 세월이 되고 마른 눈물이 이곳이 되면서 지나온 주막들 아련히 고향은 마냥 고요하여라 아, 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 조병화시집 / 고요한 귀향 그림 / 김 희 정 문학이야기/명시 2021.08.21
마음의 꽃병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마음의 꽃병 / 이 효 한 해가 다 저물기 전에 담밖에 서 있는 너에게 담안에 서 있는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 보인다 높은 담만큼이나 멀어졌던 친구여 가슴에 칼날 같은 말들이랑 바람처럼 날려버리자 나무 가지만큼이나 말라버린 가슴이여 서먹했던 마음일랑 눈송이처럼 녹여버리자 오늘 흰 눈이 내린다 하늘이 한 번 더 내게 기회를 준 것 같구나 하얀 눈 위에 글씨를 쓴다 내 마음의 꽃병이 되어다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12.24
눈사람 일기 ( 이 효 ) 아빠처럼 / 이 효 나는 매일 꿈을 꾸지 아빠처럼 커지는 꿈을 오늘은 아빠가 되었어 아빠 장갑 아빠 모자 아빠 마음은 어디다 넣을까 가슴에 넣었더니 너무 따뜻해서 눈사람이 녹아버렸네. 눈사람 입 / 이 효 눈 사람 입은 어디 있지? 엄마가 예쁘다고 뽀뽀해 주었더니 앵두처럼 똑 떨어졌네. 가족 / 이 효 아빠는 회사 가고 엄마는 학교 가고 오빠는 학원 가고 동생은 어린이집 가고 나는 유치원 간다. 매일매일 바쁜 우리 가족 눈이 내린 날 눈사람 만든다고 모두 모였다. 매일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귀가 큰 눈사람 / 이 효 코로나로 세상이 시끄럽다 국회의원 아저씨들 매일 싸운다 우리들 보고 싸우지 말라더니 내 귀는 점점 커진다 시끄러운 세상이 하얀 눈에 ..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