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그리움 11

상사화 / 홍해리

그림 / 김 정 수 ​ ​ ​ 상사화 / 홍해리 ​ ​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지 오명 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 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골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 ​ ​ ​ ​

10월 / 오 세 영

그림 / 김 복 연 ​ ​ ​ ​ 10월 / 오 세 영 ​ ​ ​ 무엇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 ​ ​ 오세영 시집 / 천년의 잠 ​ ​ ​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그림 / 김 정 수 ​ ​ ​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건너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면서 나는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 ​ ​ 시집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 ​ ​

수국 / 이 효

그림 / 이 효 ​ ​ ​ ​ 수국 / 이 효 ​ 마음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을 지운다는 것은 회오리바람 화병에 달덩이만한 수국을 손으로 뭉개면서 알게 되었다 ​ 지우면 지울수록 내면에서 올라오는 짙은 색들 꺼내놓으면 감당할 수 없을까 봐 세월로 눌러 놓았던 아픈 흔적들 ​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얼굴 항아리안에서 더욱 익어가는 그리움 세월이 가면 더 환해지는 수국 하루 종일 마음에 모진 붓질을 한다 ​

입술 / 이 성 복

그림 / 석운 ​ ​ ​ 입술 / 이 성 복 ​ ​ 우리가 헤어진 지 오랜 후에도 내 입술은 당신의 입술을 잊지 않겠지요 오랜 세월 귀먹고 눈멀어도 내 입술은 당신의 입술을 알아보겠지요 입술은 그리워하기에 벌어져 있습니다 그리움이 끝날때까지 닫히지 않습니다 내 그리움이 크면 당신의 입술이 열리고 당신의 그리움이 크면 내 입술이 열립니다 우리의 입술은 동시에 피고 지는 두 개의 꽃나무 같습니다 ​ ​ ​ ​

첫사랑 / 류 시 화

​ ​ 첫사랑 / 류 시 화 ​ ​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이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 ​ 시집 : 마음이 예뻐지는 시

아쉬움 / 용 혜 원

그림 : 권 영 애 ​ ​ 아쉬움 / 용 혜 원 ​ 살다 보면 지나고 보면 무언가 부족하고 무언가 허전하고 무언가 빈 듯한 아쉬움이 있다 ​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때 그러지 말고 잘할걸 하는 후회스런운 마음이 생긴다 ​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다가 지나고 나면 떠나고 나면 알 것 같다 ​ 그런 아쉬움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그만큼의 그리움이 있다 그만큼의 소망이 있다 그만큼의 사랑이 있다 ​ ​ ​ 시집 : 용혜원의 그대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시 ​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 / 강 원 석

그림 / 정 경 혜 ​ ​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 / 강 원 석 ​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 쓸쓸한 나의 옷깃을 이처럼 흔들지는 않을 텐데 ​ 바람이 그리움을 몰라 옷깃에 묻은 슬픔까지 무심히 날려 버리네 ​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 이 마음 꽃잎 위에 실어 그녀에게 달려갈 텐데 ​ 바람이 그리움을 몰라 웃고 있는 꽃잎만 이유 없이 떨구더라 ​ ​ 시집: 너에게 꽃이다 ​ ​

경춘선 숲길, 혼자 뜨겁게

오래된 철로 위 낙엽이 눕는다. 나뭇잎들은 떠나고 싶어 한다. 찬비는 낙엽 소리를 잠재운다. 자전거길 홀로 마음을 다독여본다.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말이 없다. 구름으로 작별 인사를 쓴다. 손 흔드는 갈대도 속울음 참는다. 눈부시게 왔다가, 잔잔하게 떠나는 가을 기차가 떠날 시간을 정적 소리로 알려준다. 시끄러웠던 여름도, 가을도 빈 의자로 남는다. 눈물은 떨어져 붉은 열매로 앉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등불도 마음을 끈다. 헤어진다는 것은 곧 그리움이다. 시간이 죽기까지 돌면 별이 되어 오겠지. 눈물 괸 눈짓으로, 혼자 뜨겁게 사랑했다 말한다. 오, 가을이여~ 안녕

가을 눈동자 (자작 시)

가을 눈동자 / 이 효 누이가 오려나? 마을 어귀에 노란 국화 켜놓았다 짧은 햇살에 동네 처녀들 치맛자락 들고 뛰노는데 서울로 돈 벌러 간 누이는 오지 않는다 햇살을 빨랫줄에 매달아 논다 깜박 졸고 있는 사이 해는 손가락 사이로 빠졌나간다 밤새도록 가을 나무에 떼울음 붉게 매달아 논다 노랗게 그리움 가지마다 속울음 익는다 이른 아침 먼저 마중나간 눈동자들 마을 어귀가 화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