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그리움 12

콩고강 연가 / 이효

그림 / 박정실콩고강 연가 / 이 효 야자수는 홀로 노래 부른다고향은 외딴섬 수평선 너머 흑백 사진으로 몸살 앓는다 하루 종일 숲에서 서성이며고향의 소리를 더듬는다 마음 밭에 그리움이 붉다 숲은 한 방울의 눈물로 푸른 옷을 갈아입는다기억의 장소로 떠날 채비를 한다 섬과 섬 사이, 뼈마디로 다리를 놓는다홀로 출렁거렸을 침묵의 물결그리움은 먼 하늘이 된다 나무의 오랜 꿈, 석양에 쓰는 편지 슬프지만 잘 견디어 냈노라고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상사화 / 홍해리

그림 / 김 정 수 ​ ​ ​ 상사화 / 홍해리 ​ ​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지 오명 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 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골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 ​ ​ ​ ​

10월 / 오 세 영

그림 / 김 복 연 ​ ​ ​ ​ 10월 / 오 세 영 ​ ​ ​ 무엇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 ​ ​ 오세영 시집 / 천년의 잠 ​ ​ ​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그림 / 김 정 수 ​ ​ ​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건너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면서 나는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 ​ ​ 시집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 ​ ​

수국 / 이 효

그림 / 이 효 ​ ​ ​ ​ 수국 / 이 효 ​ 마음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을 지운다는 것은 회오리바람 화병에 달덩이만한 수국을 손으로 뭉개면서 알게 되었다 ​ 지우면 지울수록 내면에서 올라오는 짙은 색들 꺼내놓으면 감당할 수 없을까 봐 세월로 눌러 놓았던 아픈 흔적들 ​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얼굴 항아리안에서 더욱 익어가는 그리움 세월이 가면 더 환해지는 수국 하루 종일 마음에 모진 붓질을 한다 ​

입술 / 이 성 복

그림 / 석운 ​ ​ ​ 입술 / 이 성 복 ​ ​ 우리가 헤어진 지 오랜 후에도 내 입술은 당신의 입술을 잊지 않겠지요 오랜 세월 귀먹고 눈멀어도 내 입술은 당신의 입술을 알아보겠지요 입술은 그리워하기에 벌어져 있습니다 그리움이 끝날때까지 닫히지 않습니다 내 그리움이 크면 당신의 입술이 열리고 당신의 그리움이 크면 내 입술이 열립니다 우리의 입술은 동시에 피고 지는 두 개의 꽃나무 같습니다 ​ ​ ​ ​

첫사랑 / 류 시 화

​ ​ 첫사랑 / 류 시 화 ​ ​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이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 ​ 시집 : 마음이 예뻐지는 시

아쉬움 / 용 혜 원

그림 : 권 영 애 ​ ​ 아쉬움 / 용 혜 원 ​ 살다 보면 지나고 보면 무언가 부족하고 무언가 허전하고 무언가 빈 듯한 아쉬움이 있다 ​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때 그러지 말고 잘할걸 하는 후회스런운 마음이 생긴다 ​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다가 지나고 나면 떠나고 나면 알 것 같다 ​ 그런 아쉬움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그만큼의 그리움이 있다 그만큼의 소망이 있다 그만큼의 사랑이 있다 ​ ​ ​ 시집 : 용혜원의 그대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시 ​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 / 강 원 석

그림 / 정 경 혜 ​ ​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 / 강 원 석 ​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 쓸쓸한 나의 옷깃을 이처럼 흔들지는 않을 텐데 ​ 바람이 그리움을 몰라 옷깃에 묻은 슬픔까지 무심히 날려 버리네 ​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 이 마음 꽃잎 위에 실어 그녀에게 달려갈 텐데 ​ 바람이 그리움을 몰라 웃고 있는 꽃잎만 이유 없이 떨구더라 ​ ​ 시집: 너에게 꽃이다 ​ ​

경춘선 숲길, 혼자 뜨겁게

오래된 철로 위 낙엽이 눕는다. 나뭇잎들은 떠나고 싶어 한다. 찬비는 낙엽 소리를 잠재운다. 자전거길 홀로 마음을 다독여본다.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말이 없다. 구름으로 작별 인사를 쓴다. 손 흔드는 갈대도 속울음 참는다. 눈부시게 왔다가, 잔잔하게 떠나는 가을 기차가 떠날 시간을 정적 소리로 알려준다. 시끄러웠던 여름도, 가을도 빈 의자로 남는다. 눈물은 떨어져 붉은 열매로 앉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등불도 마음을 끈다. 헤어진다는 것은 곧 그리움이다. 시간이 죽기까지 돌면 별이 되어 오겠지. 눈물 괸 눈짓으로, 혼자 뜨겁게 사랑했다 말한다. 오, 가을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