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김 복 연
10월 / 오 세 영
무엇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세영 시집 / 천년의 잠 <시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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