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호수 시 모음 (속리산 저수지 풍경)

푸른 언덕 2021. 10. 22. 18:19

 

호수 / 정 지 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눈을 감아도 따라오는

사람이 있으니 나는 탈이다.

시집 / 김용택이 사랑하는 시,

시가 내게로 왔다 2 <마음 산책>

 

 

호수 / 송 수 권

가을 하늘이 호수를 찔러본다

소금쟁이가 구름 한 점을 빨대로 빨아 본다

가을 하늘이 호수에 누워 있다

다시 구름 한 점이 지나간다

돌 하나를 던져본다

고요가 얼음처럼 깨진다

송수권 시집 / 허공에 거적을 펴다 < 도서출판 지혜>

 

 

호수 연가 / 권 영 민

깊은 산

외로움 거느리고

바다보다 깊은

파문 속에 내리면

메아리 산울림 되어

달빛 총총히

별을 부른다

 

 

천정호에서 / 나 희 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그러했다

나희덕 시집 / 그곳이 멀지 않다 < 문학 동네>

 

 

호수 / 문 태 준

당신의 호수에는 무슨 끝이 있나요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한 바퀴 또 두 바퀴

호수에는 호숫가로 밀려 스러지는 연약한 잔물결

물위에서 어루만지는 미로

이것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문태준 시집 /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 동네>

 

 

 

호수 / 이 형 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했던 청춘이

어느덧 잎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잠잠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같은 것을

또하나 마음속으로 지니는 일이다.

 

 

가을 호수 / 나 호 열

이제

가을 호수가 되었습니다

그리움의 들 물길이

외로움의 날 물길보다

깊어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없습니다

길이 없어

흰 구름만이 철새처럼

발자국을 남기고

눈도 씻고 가는 곳

당신의 얼굴

가득히 담아

바람은 가끔

물결을 일렁이게 하지만

당신이 놓아준

작은 숨결들을

속으로만 키우는 기쁨입니다

이제

가을 호수가 되었습니다

당신만을 비추는

손바닥만

거울이 되었습니다

 

 

호수 / 문 정 희

 

이제야 알겠네

당신 왜 홀로 있는지를

손에는 검버섯 피고

눈 밑에

산 그림자 밀려온 후에야

손과 손이

뜨거이 닿아

한 송이 꽃을 피우고

봄에도 여름에도

강물 소리 가득하던 우리 사이

벅차오르던 숨결로

눈 맞추던 사랑

이제 호수 되어

먼 모랫벌로 밀려가 버린 것을

이제야 알겠네

물이 된 지금에야.

 

 

호수 / 윤 보 영

그대 보내고 난 뒤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덤덤하게 지내기가 힘들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잔잔한 호수처럼 보였어도

호수에 담긴 물이

내 그리움인 줄은

아무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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