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정 지 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눈을 감아도 따라오는
사람이 있으니 나는 탈이다.
시집 / 김용택이 사랑하는 시,
시가 내게로 왔다 2 <마음 산책>
호수 / 송 수 권
가을 하늘이 호수를 찔러본다
소금쟁이가 구름 한 점을 빨대로 빨아 본다
가을 하늘이 호수에 누워 있다
다시 구름 한 점이 지나간다
돌 하나를 던져본다
고요가 얼음처럼 깨진다
송수권 시집 / 허공에 거적을 펴다 < 도서출판 지혜>
호수 연가 / 권 영 민
깊은 산
외로움 거느리고
바다보다 깊은
파문 속에 내리면
메아리 산울림 되어
달빛 총총히
별을 부른다
천정호에서 / 나 희 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그러했다
나희덕 시집 / 그곳이 멀지 않다 < 문학 동네>
호수 / 문 태 준
당신의 호수에는 무슨 끝이 있나요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한 바퀴 또 두 바퀴
호수에는 호숫가로 밀려 스러지는 연약한 잔물결
물위에서 어루만지는 미로
이것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문태준 시집 /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 동네>
호수 / 이 형 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했던 청춘이
어느덧 잎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잠잠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같은 것을
또하나 마음속으로 지니는 일이다.
가을 호수 / 나 호 열
나
이제
가을 호수가 되었습니다
그리움의 들 물길이
외로움의 날 물길보다
깊어
나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없습니다
길이 없어
흰 구름만이 철새처럼
발자국을 남기고
눈도 씻고 가는 곳
당신의 얼굴
가득히 담아
바람은 가끔
물결을 일렁이게 하지만
당신이 놓아준
작은 숨결들을
속으로만 키우는 기쁨입니다
나
이제
가을 호수가 되었습니다
당신만을 비추는
손바닥만
거울이 되었습니다
호수 / 문 정 희
이제야 알겠네
당신 왜 홀로 있는지를
손에는 검버섯 피고
눈 밑에
산 그림자 밀려온 후에야
손과 손이
뜨거이 닿아
한 송이 꽃을 피우고
봄에도 여름에도
강물 소리 가득하던 우리 사이
벅차오르던 숨결로
눈 맞추던 사랑
이제 호수 되어
먼 모랫벌로 밀려가 버린 것을
이제야 알겠네
물이 된 지금에야.
호수 / 윤 보 영
그대 보내고 난 뒤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덤덤하게 지내기가 힘들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잔잔한 호수처럼 보였어도
호수에 담긴 물이
내 그리움인 줄은
아무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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