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10월 / 오 세 영

푸른 언덕 2021. 10. 24. 19:52

그림 / 김 복 연

 

10월 / 오 세 영

무엇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세영 시집 / 천년의 잠 <시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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