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강물 9

물, 또는 내려가기 / 이태수

그림 / 심수진 물, 또는 내려가기 / 이태수 물을 마신다 아래로 내려가는 물, 나는 물과 더불어 흘러간다 물은 언제나 멈추기를 싫어한다 개울물이 아래로 흘러가고 강물은 몸을 비틀면서 내려간다 폭포는 수직으로 일어서듯 줄기차게 내리꽂힌다 물을 돌이켠다 안으로 스며드는 물, 새들이 낮게 날아 내리고 공중부양을 하던 뜬구름 몇 점이 제 무게 탓으로 떨어진다 가늘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며 빗금으로 뛰어내린다 빗줄기를 바라보는 내가 내린다 이태수 시집 / 내가 나에게 *1947년 경북 의성 출신 *1974년 으로 등단 *천상병 문학상, 동서 문학상, 카톨릭 문학상

다리 / 정복여

그림 / 장순업 ​ ​ 다리 / 정복여 ​ ​ 강물 이라든지 꽃잎 이라든지 연애 그렇게 흘러가는 것들을 애써 붙들어보면 앞자락에 단추 같은 것이 보인다 가는 끝을 말아쥐고 부여잡은 둥긂 그 표면장력이 불끈 맺어놓은 설움에 꽁꽁 달아맨 염원의 실밥 ​ 바다로나 흙으로나 기억으로 가다 잠깐 여며보는 그냥...... 지금...... 뭐...... 그런 옷자락들 ​ 거기 흠뻑 발 젖은 안간힘의 다리가 보인다 ​ ​ ​ ​ 정복여 시집 / 체크무늬 남자 ​ ​ ​ ​ ​

​함께 눈물이 되는 이여 / 양광모

그림 / 장 문 자 ​ ​ ​ ​ ​ 함께 눈물이 되는 이여 / 양광모 ​ ​ ​ 낮은 곳에선 모두 하나가 된다 ​ 빗방울이 빗물이 되듯 강물이 바다가 되듯 ​ 나의 마음 자리 가장 낮은 곳까지 흘러와 함께 눈물이 되는 이여 ​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우리 함께 샘물 같은 사랑이 되자 ​ ​ ​ ​ ​ 시집 / 가끔 흔들렸지만 늘 붉었다

상사화 / 홍해리

그림 / 김 정 수 ​ ​ ​ 상사화 / 홍해리 ​ ​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지 오명 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 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골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 ​ ​ ​ ​

6월의 우체통 / 이 효

그림 / 최 서 인 ​ ​ ​ 6월의 우체통 / 이 효 ​ ​ ​ 하루 종일 그녀의 생각을 나뭇잎에 담았더니 붉은 열매가 달렸습니다 ​ 그녀를 손끝으로 건드렸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놀라서 마음을 창문처럼 접습니다 ​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랜 시간 그녀를 바라봅니다 유월의 해가 떨어질 무렵 다시 용기를 내서 뜰로 나갑니다 ​ 내 마음은 강물처럼 흔들리는데 그녀의 붉은 입술은 숨 막힐 듯, 눈멀 듯, 곱기만 합니다 ​ 유월은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마음에 우체통 하나 세워놓고 달아납니다 ​ ​ ​ ​ ​

카테고리 없음 2021.06.18

강물로 그리는 새벽 별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강물로 그리는 새벽 별 / 이 효 ​ ​ 새벽 창가에 앉아 푸른 강물에 그림을 그립니다 흔들리는 나뭇잎으로 시를 쓰듯 절재된 마음을 그립니다 ​ 아주 오랜 세월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혼절한 사랑 구름과 눈물방울 비벼서 붉은 나룻배를 그립니다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인연 조용히 떠나보냅니다 ​ 어차피 인생이 내가 그리는 한 점에 그림이라면 이제는 슬픈 강물이 되지 않으렵니다 창가에 앉아있는 소녀는 세월을 삼키고 오늘도 푸른 강물에 마음을 그립니다 ​ ​ 휑한 마음, 새벽 별 하나 안고 홀로 걸어갑니다. ​ ​ ​ ​ 사진 / 청송 주산지

사랑한다 / 정 호 승

​ 사랑한다 / 정 호 승 ​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몇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 본다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 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 정호승 시집 : 내가 사랑하는 사람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