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 1363

화전

화전 / 김 병 화 그 무덥던 더위도 가셔 아침부터 시원한 바람 분다 스케치북 들고 화전 쪽으로 간다 북으로 뻗은 철길 따라가다 보면 무성한 잡초 위 머리만 동강 난 녹슨 기차본다 끊어진 선로...... 개성으로 가는 길목엔 탄가루 얼룩져 눈만 반짝이는 역부 스케치한다 소박한 입가 수염 송송하다 "잘 그리네유 좋은 취미 갖어 스라우" 긴 화차, 수레, 탄 나르는 역부들..... 온통 먹빛의 역촌이지만 하루 저무는 저녁나절 석양 눈부시다 일손 마치고 하나둘......흩어져 저마다 갈 곳 가고 있는데 유독 끊어져 슬피우는__.

목발 11 (나들이)

모발11 (나들이) / 나 호 열 한 사람은 부끄러워서 한 사람은 어색해서 평생 손 마주 잡지 못했다 오늘은 고샅길 지나 꽃구경 간다 날마다 지게 지고 소쿠리 이고 다니던 산길에 산수유도 피고 매화도 활짝 얼굴을 폈다 허리도 굽고 다리 힘도 없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손 꼭 잡았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부끄러움도 없이 어색함도 없이 한 그루 꽃나무로 피었다.

님이되어 오시는 날(자작 시)

님이되어 오시는 날 할머니 소원은 소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들어가는 것이었다. 전쟁과 찢어진 가난은 할머니 꿈도 말려버렸다. 책상 위에 덩그런한 연필 한 자루 할머니는 이름 석자 삐뚤빼뚤 쓰신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밤마다 찬 바람 소리로 오신다. 할머니, 님자 한 번 배워보실래요. 요즘 아이들이 점하나 붙이면 남이래요. 버럭 화를 내시는 할머니 한 평생 밥을 같이 먹고살았는데 어찌 남이냐 남자에 침 묻혀가며 점하나 애써 지우신다. 남이 다시 님이되어 오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