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이재무 / 국 수

푸른 언덕 2021. 5. 28. 16:20

 

이재무 / 국 수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적 아내의 살결 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 하얀 순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담긴 멸치 국물에 갖은양념을 넣고

코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국수와 친구 / 이 효

 

혼자 먹는 국수보다

둘이 먹는 국수가 더 맛있다

친구는 국수가 목으로 술술 넘어가듯

언제 보아도 물리지 않는다

살다가 지치고 힘들 때면

성북동 뒷골목 국숫집을 간다

그곳에는 늘 어깨 쳐진 사람들

친구를 찾아오듯 허름한 국숫집을 찾아온다

따뜻한 국수 한 그릇과 마주 앉아

눈물로 고명을 올리면

언제 달려왔는지 친구의 젓가락에는

내 인생 이야기가 주르륵 걸려있다

친구의 목으로 넘어가는 속 깊은 하얀 살

후루룩 후루룩

내가 다 삼켜줄게, 내가 다 꼭꼭 씹어줄게

국수는 한 젓가락도 먹지 못했는데

뜨거운 국물 때문에 눈물이 난다

불어버린 인생이 더 따뜻하고 맛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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