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 국 수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적 아내의 살결 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 하얀 순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담긴 멸치 국물에 갖은양념을 넣고
코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국수와 친구 / 이 효
혼자 먹는 국수보다
둘이 먹는 국수가 더 맛있다
친구는 국수가 목으로 술술 넘어가듯
언제 보아도 물리지 않는다
살다가 지치고 힘들 때면
성북동 뒷골목 국숫집을 간다
그곳에는 늘 어깨 쳐진 사람들
친구를 찾아오듯 허름한 국숫집을 찾아온다
따뜻한 국수 한 그릇과 마주 앉아
눈물로 고명을 올리면
언제 달려왔는지 친구의 젓가락에는
내 인생 이야기가 주르륵 걸려있다
친구의 목으로 넘어가는 속 깊은 하얀 살
후루룩 후루룩
내가 다 삼켜줄게, 내가 다 꼭꼭 씹어줄게
국수는 한 젓가락도 먹지 못했는데
뜨거운 국물 때문에 눈물이 난다
불어버린 인생이 더 따뜻하고 맛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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