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아름다움이 힘이니라 / 이어령

푸른 언덕 2021. 5. 23. 14:43

작품 : 인 미 애

 

아름다움이 힘이니라 / 이어령

 

3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이 발굴되던 날

사람들은 놀랐다.

거기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았었구나.

어느 짐승 어느 원숭이가

눈물방울 같은 꽃송이를 뿌리며

무덤을 만드는 것을 본 적 있는가.

오직 인간만이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꽃을 꺾어서 죽은자의 제단을 만든다.

 

벌과 나비는 꿀을 따기 위해 꽃을 찾지만

사람은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꽃밭으로 간다.

사람을 만든 한 송이의 꽃

영혼을 만든 한 송이의 향기

짐승의 이빨이나 발톱보다도 강한

한 송이의 꽃잎

 

수원 화성을 지을 때 신하들이 상소하기를

"무릇 성곽이란 예부터 적을 막기 위한 것.

튼튼하고 강하면 그만인 것을

어찌하여 아름답게 꾸미시려다

성심마저 상하시려 하오십니까."

 

조선의 왕 정조께서 이르시기를

아니다, 이 몽매한 자들아

아름다운 성이 적을 막는다.

아름다움이 곧 강한 힘이로다.

 

30만 년 전 네안데르탈 꽃 무덤이

성이 되었네

한국의 강한 성 아름다운 성

화성이 되었네.

 

이어령 시집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