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정 낙 희
염천교 다리 아래 비는 내리고 / 정 호 승
염천교 다리 아래 비는 내리고
내 힘으로 배우고 성공하자는
구인광고 벽보판에 겨울비는 내리고
서울역을 서성대던 소년 하나
빗속을 뚫고 홀로 어디로 간다
서울역에 서서히 어둠은 내리는데
서울역전 우체국 앞에도 비는 내리는데
아저씨, 어디로 가시는지
신문 한 장 사보세요, 네?
신문팔이 소녀의 목소리는 겨울비에 젖는다
서울역 시계탑 아래서 만나던 순아
돌아갈 곳 없이 깊어가는 서울밤
사람들의 가슴마다 불이 켜지고
무작정 상경한 소녀는 비에 젖어
어느 남자 손에 이끌려 소리없이 사라지는데
염천교 다리 아래 비는 내리고
염천교 다리 아래 빈 기차는 지나가고
흔들리는 빈 기차의 흐린 불빛 하나
젖은 내 가슴을 흔들고 지나간다
여관방의 불빛도 비에 젖는데
정호승 시선집 /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림 / 김 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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