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열쇠

푸른 언덕 2020. 6. 8. 16:37

열쇠 / 김 혜 순

역광 속에 멀어지는 당신의 뒷모습 열쇠 구멍이네
그 구멍 속이 세상 밖이네

어두운 산 능선 열쇠의 굴곡처럼 구불거리고
나는 그 능선을 들어 당신을 열고 싶네

저 먼 곳, 안타깝고 환한 광야가
열쇠 구멍 뒤에 매달려 있어서
나는 그 광야에 한 아름 백합을 꽂았는데

찰칵

우리 몸은 모두 빛의 복도를 여는 문이라고
죽은 사람들이 읽은 책에 씌어 있다는데

당신은 왜 나를 열어놓고 혼자 가는가
당신이 깜박 사라지기 전 켜놓은 열쇠 구멍 하나

그믐에 구멍을 내어 밤보다 더한 어둠 켜놓은
캄캄한 나체 하나

백합 향 가득한 그 구멍 속에서 멀어지네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0) 2020.06.10
뒷짐  (0) 2020.06.09
오늘  (0) 2020.06.07
공기시론  (0) 2020.06.06
삼릉 숲  (0) 2020.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