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뒷짐

푸른 언덕 2020. 6. 9. 15:59

뒷짐 / 문 인 수

국도에서 바닷가를 향해 갈라지는 길
입구에, 한 할아버지가 힘겹게 발거름을 떼고 있다.
잔뜩 꼬부라진 허리 때문에 길이 오히려
노인의 배꼽 쪽으로, 가랑이 사이로 파고드느라 여러 굽이 시꺼멓게 꿈틀대며 애를 먹는다.
우리는 휑하니 차를 몰아 이곳 저곳 포구를 돌아보고 올망졸망한 섬 풍경 앞에 내려 히히거리다 다시 국도 쪽으로 나왔다.
그 갈림길 입구, 거기서 이제 겨우 삼백미터 앞에서 또 한참 전에 지나친 노인을 만났다.
지팡이도 없는 더딘 발걸음의 저 오랜 말씀
ㄱ자의 짐은 ㄱ자다.
흐린 시선으로 짚어낸 길바닥엔 시시각각 채
썬 중심이 촘촘하겠다.
그 등허리에 실려 낱낱이 외로운 열 손가락,
두 손끼리 가끔 매만지며 느리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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