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고마운 햇살(자작시)

푸른 언덕 2020. 5. 8. 07:12

 

고마운 햇살 / 이 효

 

오랜만에 찾아간 아버지 산소 

서리가 곱게 뿌려졌습니다

차가운 서릿발 속에서도

질기게 올라오는 잡초들

너는 살겠다고 올라오고

나는 죽이려고 목을 비틀고

인생이 다 그렇지

수술대 위에서 생명 끈 놓으시고

이젠 그만 살련다

 

오늘은 늙은 딸이 찾아왔습니다.

멀리서 까마귀 우는소리

등 뒤에서 따듯한 햇살이

산소 위 서리를 녹여줍니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찾아온

딸내미가 밉기도 하셨을 텐데

햇살처럼 환하게 웃어 주십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무덤 옆 그림자 고개 끄덕여줍니다

고마운 햇살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매일 아버지 산소에 찾아와

포근한 이불 덮어주는 네가

못난 딸보다 낫구나.

 

 

서리가 곱게 내린 날

아버지 기일에 산소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쓴 글입니다.

어버이날이 되니 10년 전에 병상에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글을 꺼내어 다시 읽어봅니다.

가슴이 또 먹먹해집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이 사랑합니다

살아생전에 왜 이런 말들을 해드리지

못했는지 많이 후회스럽습니다.

 

내 옆에 누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 돌아보세요.

그 사람이 미워도 당신에겐 오늘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옆에 있는 그 사람에게 용기 내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참 감사합니다"

말해보는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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