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뚜벅이 이야기2/알콩달콩

인연

푸른 언덕 2020. 3. 11. 20:52




인연

 

낡은 TV가 옷을 벗고

아파트 화단 옆에서 떨고 있다

"음 ~ 또 주인을 잃어버렸군"

TV는 그렇다 치고 ,냉장고 너~ 말이야

우리 집 냉장고 보다

더 신형인 너는 또 왜? 나와서 떨고 있니?

"주인이 새벽에 이사를 갔다고~?

너만 버리고 말이야"

이놈을 우리 집 냉장고랑 바꿀까?

앞을 보나 뒤를 보나 너무 멀쩡하단 말이야

그런데 문득 내 귀에 우리 집 냉장고

우는소리가 들린다.

"주인님! 제가 주인님 모신지 10 년도

넘었습니다.

눈만 깜박깜박 거리지 나머지는

모두 제구실을 잘 한답니다.

그리고 주인님과 내가 함께 쌓아 올린

추억이 얼마나 많습니까?

봄날에 주인님이 쑥을 캐서 쑥떡을

배가 터지도록 냉동고에 밀어 넣을 때 내 배가 얼마나 아팠는 몰라요.

그래도 주인님 건강을 위해서 꾹 참았습니다.

사람만 소식해야 오래 사는 거 아닙니다.

저도 소식해야 수명이 길어집니다.

그리고 가을에는 감을 얼려서 천연 아이크림 만든다고

내 배 터지게 밀어 넣으신 것 벌써 잊으셨나요?

아드님 학교 다닐 때 김밥 싸준다고

재료 사다가 넣을 때 저도 얼마나

즐거웠는지 주인님은 모르시죠?

주인님이 야채 박스에 오이, 호박, 브로커리.. 잔뜩 사다 놓으시고

깜박 하신날 오이가 물러서 썩는 냄새가 나서

내 몸안으로 진동 할 때도

주인님 바빠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주인님

마음 헤아려 드린 것 잊으셨나요?

아저씨랑 저녁 잘 잡수시고 부부 싸움한 날 밥상 치우면서 문짝 떨어져라

분풀이 하신 거 생각 안나시나요

그때 그 일로 충격을 받았는지 지금도 제 눈이 깜박 거리고 , 손잡도 불안합니다.

저를 내다가 버리든지 말든지는 주인님

생각에 달려 있지만

솔직한 제 심정은 정든 이 집을 떠나기 싫습니다.

죽을 때 까지 이 집에서 있고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끼리도 인연이 소중하겠지만,

사람과 물건끼리도 인연이 소중하다는 것을 왜 사람들이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인님! 아모쪼록 깊이 생각해 보시고

저와의 소중한 인연을 끝까지 잘 이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주인님 댁 식구들 건강을 위해서 열 일을 다하고 있습니다.

주인님 사랑합니다.

소중한 인연 끈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냉장고야 ! 미안했다.

오늘 너가 인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어서 참 고맙구나.

나도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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