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자동 판매기 / 최승호

푸른 언덕 2023. 9. 5. 06:59
 

그림 / 김한겸

자동 판매기 / 최승호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는 게

커피가 쏟아지는 버튼을 둘러버렸다

습관의 무서움이다

 

무서운 습관이 나를 끌고 다닌다

최면술사 같은 습관이

몽유병자 같은 나를

습관 또 습관의 안개나라로 끌고 다니다

 

정신 좀 차려야지

고정관념으로 굳어가는 머리의

자욱한 안개를 걷으며

자, 차린다, 이제 나는 뜻밖의 커피를 마시며

 

돈만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작동하는

자동판매기를

賣春婦(매춘부)라 불러도 되겠다

黃金(황금)교회라 불러도 되겠다

 

이 자동판매기의 돈을 긁는 포주는 누구일까 만약

그대가 돈의 權能(권능)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대는 돈만 넣으면 된다

 

그러면 賣淫(매음)의 자동판매기가

한 컵의 사카린 같은 쾌락을 주고

十字架(십자가)를 세운 자동판매기는

神 (신)의 오렌지 주스를 줄 것인가

최승호 시집 / 코뿔소는 죽지 않는다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잔과 용서 / 박지일  (3) 2023.09.07
아침의 마음 / 오은  (2) 2023.09.06
꽃들 내 곁에 와서 눕다 / 김영자  (3) 2023.09.03
나태주 / 좋은 약  (4) 2023.08.30
바다를 굽다 / 조은설  (6) 2023.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