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신일호
공부 / 김사인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면 나는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착하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인적 드문 소로길 스적스적 걸어
날이 저무는 일
비 오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으로 골똘히 서 있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김사인 시집 /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 1956년 충북 보은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시집 <밤에 쓰는 편지><가만히 좋아하는><박상륭 깊이 읽기><시를 어루만지다>
*2022년 서울 광화문 글판 김사인 시 <공부>선정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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