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섬진강 2 / 김용택

푸른 언덕 2023. 4. 8. 19:48

 


림/ 김미자

 

 

 

섬진강 2 / 김용택

 

 

저렇게도 불빛이 살아나는구나.

생솔 연기 눈물 글썽이며

검은 치마폭 같은 산자락에

몇 가옥 집들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불빛은 살아나며

산은 눈뜨는구나.

어둘수록 눈 비벼 부릅뜬 눈빛만 남아

섬진강물 위에 불송이로 뜨는구나.

 

밤마다 산은 어둠을 베어내리고

누이는 매운 눈 비벼 불빛 살려내며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은

강물에 가져다 버린다.

누이야 시린 물소리는 더욱 시리게

아침이 올 때까지

너의 허리에 두껍게 감기는구나.

 

이른 아침 어느새

너는 물동이로 얼음을 깨고

물을 퍼 오는구나.

아무도 모르게

하나 남은 불송이를

물동이에 띄우고

하얀 서릿발을 밟으며

너는 강물을 길어오는구나.

 

참으로 그날이 와

우리 다 모여 굴뚝마다 연기나고

첫날밤 불을 끌 때까지는,

스스로 허리띠를 풀 때까지는

너의 싸움은, 너의 정절은

임을 향해 굳었구나.

 

 

 

 

김용택 시집 /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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